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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선교사, 미국인 보리스에 대해
김정동 교수 (목원대교수)


독립운동과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건물이 있다. 그것이 종로 인사동의 태화(泰和)기독교사회관이다. 1938년 세워진 것이니까 3.1운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건물이다. 어쨌든 그 건물이 누가 설계한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것 같다. 건물은 있는데 건축가가 없는 것이다.

이 건물은 미국의 선교사 건축가였던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 1880-1964)가 설계하고 강윤(姜沇, 1899-1974)이 공사감독을 한 것이다. 아마 보리스만큼 한국에 많은 건축물을 남겨 논 외국인 건축가도 없을 것이다. 보리스는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켄사스 주 레븐워즈(Leavenworth)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콜로라도 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1905년 24세 되던 해 선교사로서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일본에 갈 때 그와 한 배를 탔던 선교사는 그 유명한 우리암(禹利岩, Frank Earl Cranton Williams, 1883-1962) 목사였다. 두 사람은 미국 감리교의 선교사였다. 그는 충청도 도청 소재지였던 공주로 왔던 것이다. 그리고 1900년 영명학교(永明學校) 즉, 공주남자학교(Konju Boys School)를 세웠다.

보리스는 처음 일본 사카의 현립(滋賀縣立) 야하타(入幡)상업학교의 영어교사로 출발했으나(1905) 여의치 않자 오미이 미션(近江, Omi Mission)과 오미이 브라더우드(Omi Brotherhood)를 중심으로 선교 영역을 넓혀 갔다. 그러나 선교가 쉽지 않자 1909년 교토(京都)에 건축설계 감리사무소를 개설하게 된다. 그에게 세계 YMCA연맹(World Alliance of YMCA)은 아주 좋은 고객이 되었다.

보리스 사무소는 한창일 때 33명에 이르는 건축가를 소원으로 두고 있었는데 한국인으로 강윤이 있었다. 강윤은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陽村面 仁川里)에서 출생했는데 영명학교를 다녔다(1920). 교장이 보리스의 친구 우리암이었다. 그는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 6월형에 2년의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이후 우리암 목사의 소개로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에 있는 칸사이 공학(關西工學) 전수학교에 입학, 건축수업을 마쳤다.
1923년 졸업 후 오사카에 있는 ‘보리스 건축사무소’에 입소, 실무수업을 쌓던 중 1938년 보리스가 서울에 출장소를 개소하게 되자 주재원으로 귀국한다. 당시 출장소는 종로 야소교서회(耶蘇敎書會)에 있었다. 강윤은 태화기독교사회관의 공사책임을 맡았다.

보리스의 작업은 1920년대부터 피크를 이루는데 그동안 한국을 7회정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의 업적은 근대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약 146건의 건물을 설계했는데 이것은 그가 남긴 약 1,500건의 설계의 10 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한의 것은 약 110건이 확인되었는데 1910년대 11건, 1920년대 25건, 1930년대 54건, 1940년대 19건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세브란스 병원, 연희전문, 이화여전, 서울 YMCA(도쿄의 YMCA도), 남산교회, 부산진교회, 평양 광성중학교, 함흥 영생중학교, 선천중학교, 대구 계성학교 등이 있다. 우리암 교장은 보리스에게 영명학교 교사의 설계도 맡겼다.
태화기독교사회관과 연세대학교 교수 식당도 보리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강윤의 설계 의도가 돋보인다. 3·1운동의 장소성과 한양절충식의 표현, 태극 무늬의 삽입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강윤은 귀국 후 처녀작으로 교회건축 남산교회당(회현동 아시아나 항공 자리)을 다뤘으며 일련의 감리교 계통 건축에 참여했다. 이화여대(음악당, 본관, 기숙사)에 유작이 있고 대천 해수욕장에 있는 대천외국인 수양관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설계사무실은 종로 기독교성서공회(1928, 헐림)에 있었는데 말년에는 팔판동(八判洞) 자택에 칩거했다. 1974년 봄 세상을 뜨자 종로 중앙감리교회에서 영결식이 치러졌고 경기도 일산에 묻혔다.
어쨌든 지금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1979년 철거되어 없어진 태화기독교사회관 강당의 내부 지붕 틀에 목조(木彫)되었던 태극 문양 사진을 찍어 둔 일이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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