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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 지향”
사람들은 김남철목사가 20여년 동안 정성스럽게 섬겨 온 안정적인 교회(서울 양광교회)를 50대 중반에 훌쩍 사임하고 개척교회(서울 열림교회)를 맡았을 때 놀랐다. 그는 새로운 개척교회에서 자신의 소신대로 목사 중심의 교회가 아닌 예수 중심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회를 시도했다. 그러한 목회 시도를 학문적으로 정리해서 감리교신학대학교에 목회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한뒤 그는 다시 하늘, 땅, 바다가 있는 고향 강원도 속초에 돌아와서 마음으로 다시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의 고백처럼, 이 책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목회현장에서 고민하고 실험한 한 목회자의 실천목회 보고서가 된다. 그가 목회활동을 해 왔던 현장은 가부장 문화, 군사 문화, 권위주의 문화, 폐쇄적인 문화가 팽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는 늘 하나님 앞에서 가진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 이 땅에 오셔서 목회를 하신다면 어떤 스타일의 목회를 하실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회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김남철 목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기도와 명상 중에 섬기는 목회, 열린 목회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으며,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에 관심을 가지고 목회를 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주변의 생각은 오랫동안 양광교회 소속목사로써 그의 목회를 지근거리에서 지켜 본 김득중총장의 다음과 같은 평가에 잘 나타나 있다.

김남철 목사님은 “개교회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폐쇄적인 내부 지향성을 넘어서야 한다”며 교회의 폐쇄성이 극복되고 “교회가 개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20년 동안 목회하던 양광교회를 자진해서 사임하고 새로운 목회를 시작하고자 하였는데, 그 교회의 이름부터 ‘열림교회’라고 붙였다(그 이후 그는 다시 열림교회를 사임하고 속초교회에서 열린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열림’과 ‘개방’이 그의 주제이고 목회 방향이고 목회 철학인 셈이다. 그 배경에는 분명히 종교개혁시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외쳤던 ‘만인사제직’ 사상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회가 목사 중심이어서는 안되며 평신도 중심이어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교회에 들어오게 될 누구나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야말로 진정한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동역자”로 보는 분명한 시각을 갖고 있고, 또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교회 개방을 추구하는 목회를 계획하고 있다(김득중 교수의 추천사 중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폐쇄적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있는, 개방적인 하나님이라는 것, 또한 신약성서도 예수님의 목회 방법과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폐쇄적인 교회가 아니라 개방적인 교회가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 책의 근간이 목회학 박사학위를 위한 논문이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조금 딱딱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나가면, 성서적 통찰과 평신도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교회가 개방되어야 한다’는 성서신학적 토대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자신과 이방인에게 복의 매개체가 되게 하시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폐쇄적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있는, 개방적인 하나님이라는 것, 또한 신약성서도 예수님의 목회 방법과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폐쇄적인 교회가 아니라 개방적인 교회가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목회 형태는 ‘떠돌이 목회’(Wandering Ministry)로서, 건물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도리어 ‘열린 공간’을 마음껏 활용하는 공개적인 목회활동, 곧 세상을 향해 열린, 그리고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목회 활동이었다. 또한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건물에서 자신을 찾아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리셨다가 도와 주었던 분이 아니라 오히려 친히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선 분이다. 그가 성육신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것 자체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pp. 42-43).”
김남철목사는 눈에 보이는 교회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에 무게를 두었고, 새로운 비전에 대해 열려있는 교회를 지향하기에 ‘평범한 사람이든 지도자의 책무를 감당하는 사람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들이 소중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면서 오늘의 교회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와 같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 하는가”에 대하여 열려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누구를 쓰시려 하는가”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교회는 그 어떤 대상이나 목적에서도 스스로 제한하거나 폐쇄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p. 48).
이러한 ‘열려 있음’, 즉 개방은 종교개혁의 정신이며, 한국 기독교 선교와 근대화의 요체였다. 김남철 목사는 교회의 개방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필연적임을 직시할 뿐 아니라, 평신도에 대해서도 하나의 몸 된 교회 체제에서 공존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별첨 2>에 실려있는 ‘열림교회를 개척함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보면, 그는 개척당시의 교인들을 “개척동지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어떤 우월이나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동역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목사를 폄하(貶下)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목사에게 향하기 쉬운 교인들의 관심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리려는 소신에서 “목사를 믿지 마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루터의 ‘만인사제론’과 ‘소명론’은 김남철 목사의 평신도에 대한 이해가 어떤 곳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평신도는 ‘악마의 나라’와 싸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두 영역-그리스도의 정부와 세상의 정부-을 연결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소명론). 따라서 모든 직업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자신의 임무에 성실하고 거룩하면 모두 다 사제가 될 수 있다(만인사제론). 평신도와 성직자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신분상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목사나 평신도의 구별은 그 신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임에 따라 역할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한 몸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 개방에 대한 신학적 토대는 ‘목회와 교육의 개방 체제론적 접근’를 통하여 교회가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확인하고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상호의존하고 있는 체제임을 확인한다. 또한 이러한 체제적 속성은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와 아동 및 청소년들의 요구와 환경을 고려해야 함을 주시한다. 김남철 목사는 이상의 신학적 토대와 고려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열림교회 교인을 대상으로 ‘열린교회를 지향하는 교인 교육 프로그램’의 실제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은 분명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님의 교회를 향한 섬세한 신앙과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어떤 목회자들은 분명 대형교회를 추구하면서 외형으로나 재정적인 면에서의 교회 성장을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김남철 목사는 소위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향하여 부름받아 가기를 주저 않는다. 또한 자기 혼자 그 길을 가려하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가려한다. 평자는 이러한 그의 목회철학에 반하여 선뜻 서평을 쓰며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필자는 이 책이 목회를 하고 있는 동역자들과 젊은 신학도들은 물론이고 의식있는 평신도들 모두에게 교회를 섬기는데 아주 유익한 책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의 약속처럼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지역 사회 봉사 프로그램』이란 책도 하루 속히 출판되어, 한 목회자의 목회 여정으로서 뿐 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새로운 교회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익수
(감신대 신약학교수)





타·임·즈·추·천·도·서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지음
·도서출판 산하




오늘 점심으로 비빔밥을 사 먹었다. 볶은 당근, 취나물, 콩나물, 상치, 계란까지 올라와 있다. 4천원이 적은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텃밭에 채소들을 길러 봐서 느끼는 바이지만 어느 것 하나 정성을 드리지 않고 얻을 것은 없다. 그래서인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조심조심 받아먹게 된다. 목숨이라서 그렇다.
십수년 전에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이 동화를 다시 꺼내 읽어봤다. ‘칡넝쿨이랑 과남풀이랑 뜯어먹으면 맛있지만 참말 마음이 아프구나. 뜯어 먹히는 건 모두 없어지고 마니까.‘ 산토끼 한 마리가 일상에서 던지는 이 물음 한 마디로 글은 시작된다. 돌이 토끼는 늘 그저 먹는 것들에 대해서 문득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루종일 배를 골게 되고 날이 어둑해지자 토끼는 이렇게 묻는다. “하느님,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셔요?” “보리수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지.” 자기도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졸라보지만 그분의 대답은 이랬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의례적으로 그렇게 해 오는 것에 대해 문득 물음을 던져 보자. “저 목숨들이 아파하지 않을까?” “널 먹어도 되니?” 몸 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목숨이거늘, 이것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먹는 것에서 특히 그렇다. 목숨들이 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고 먹으면 된다.
일전에 교우들한테 물어봤다. 한 주는 “요즘 제 철 음식이 뭐요?” 다음 주일에는 “어떤 꽃들이 요새 피지요?” 놀랍게도 제 철 음식과 제 철에 피는 꽃과 나무를 태반은 엉뚱하게 알고 있었다. 제 철이 아닌 것은 다 에너지를 소비해서 얻은 것이다. 그 결과로 생기는 것은 생태계의 교란과 병이다. 그놈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서운 전쟁을 일삼지 않았던가! 하느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까닭은 그런 인간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이의 눈물을 보고 사람한테도 마른 눈물샘이 터졌으면 좋겠다.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안성영 목사(사랑교회, 어린이도서관 느티나무)



「소피의 달빛 담요」

·글 에일린 스피넬리
그림 제인 다이어
옮김 김흥숙
·파란자전거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되고, 영웅적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특별한 덕목이 된 것이 오늘날의 사회이다. 어떠한 공동체이든지 개개인의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생명력 자체가 상실된 것 같은 무기력한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젊었을 시절 하숙생활을 경험했던 지은이 에일린 스피넬리는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한 작가는 그 하숙생활에서 가난한 여인이 갓난아이에게 구멍난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책의 주인공인 거미, ‘소피’는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외로운 예술가이다. 자신의 몸에서 뽑아 내는 거미줄로 이웃들을 위한 소중한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하찮게 여겨지고 배척 당한다. 곧 엄마가 되는 3층 사는 여인의 아기를 위해 ‘소피’는 마지막 작품을 만든다. 이미 늙고 지친 ‘소피’가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한 생명의 잉태를 지켜내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삶은 소멸되지만 새로운 생명의 태어남과 그 생명을 덮는 작품인 ‘달빛 담요’에 의해 소피는 다시 태어난다. ‘소피’의 희생과 ‘헌신’은 ‘사랑’으로 승화되고, ‘담요’로 부활하여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만든다. 에일린 스피넬리는 그 담요에 ‘소피’의 ‘가슴’까지 담아 넣는다. 징그러울 것 같은 거미가 정겹게 다가오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화사한 그림과 거미줄을 짜는 소피의 여덟 개의 다리가 마음 속에 가지런히 녹아 남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이대희 목사(겨자씨교회)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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