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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직면 교리적 혼란의 대안 제시
김진두 목사의 책 ‘우리의 교리’라는 제목은 존 웨슬리가 성서적인 기독교의 요약으로 생각했던 초기 감리교의 교리를 가리키는 말로부터 유래한다.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 감리교의 교리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리교 교리에 대한 오해가 감리교회의 안팎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97년에 새 [교리와 장정]을 출간하면서, 기독교대한검리회의 역사와 교리를 많이 보완했다. 이점에서 김진두 목사의 책은 감리교회의 교리에 대한 시의적절한 해설이다.
‘우리의 교리]’는 전체가 5장으로 되어 있다. 제 1장은 감리교신학의 사중표준인 성서, 전통, 체험, 이성에 대한 내용이다. [교리와 장정]에도 감리교신학의 지침 안에 포함된 사중표준은 교리의 기준이 아니라, 신학의 지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점에서 종래의 사중표준이 영미의 감리교회의 것이라면, 한국감리회 신학을 위한 지침으로서 사중표준과 함께 토착문화가 수용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제 2장 초기감리교교리의 성격은 감리교교리를 성서적, 사도적, 역사적, 이성적, 경험적, 실천적, 구원론적, 복음전도적, 목회적, 설교학적, 영성적이며 평이하다고 규정한다. 저자가 초기감리교의 교리연구에서 뚜렷하게 제시하는 부분은 제 3장 감리교교리의 표준에서이다. 저자는 초기감리교리의 표준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웨슬리의 표준설교, 신약성서주해, 24개의 종교의 강령이외에도, 초기 감리교 총회회의록, 감리교 찬송집, 웨슬리의 논문들을 포함한다.
제 4장 우리의 교리는 1763년의 ‘모범시행령’에 의거하여 감리교 목회자들에게 감리교교리의 표준에 의거하여 목회를 수행할 것을 명시한 것에 근거한다. 초기감리교회는 교리를 경시하지 않고 중시했으며, 복음의 본질적 교리와 신학적 의견을 비판적으로 구분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감리교회의 본질적 교리를 웨슬리가 말한 원죄, 칭의, 성화 외에도 성령의 확증 까지도 포괄한다. 이점에 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 자신에게서도 성령의 확증의 교리에 대하여 초기의 입장이 말기에 가서 매우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걸코 확증의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제 5장 감리교의 네가지 ‘모든 사람’의 교리는 저자가 웨슬리안 정통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영국 감리교회의 중심교리이다. 감리교 네가지 모든 사람의 교리(Methodist Four Alls)로 불리는 네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All need to be saved.). 둘째,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All can be saved.). 셋째, 모든 사람이 구원의 확증을 얻을 수 있다(All can be assured.). 넷째, 모든 사람이 완전한 성화를 이룰 수 있다(All can be sanctified uttermost.).
저자는 감리교 네가지 모든 사람의 교리에 의거하여 칼빈주의의 5대 강령에 대한 웨슬리적 대안을 명시한다. 이 책의 125 쪽에 나오는 칼빈주의와 웨슬리의 비교 도표는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감리교회는 칼빈주의와 함께 인류의 전적 타락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감리교회는 조건적 선택, 보편적 구원, 응답가능한 은혜, 성도의 완전성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칼빈주의와 다르다.
저자는 본론 이외에도 3개의 보론을 통해서 현재 감리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교리적 혼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보론 중에서 두번 째 것은 제 5장에 해당되는 것인데, 편집상의 실수로 보론으로 되어 있다. 저자의 보론 중에서 선행적 은혜와 감리교신학의 전이에 대한 것은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저자가 소개한 것이다. 선행적 은혜에 대한 보론은 감리교가 복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전환했을 때 가장 많이 남용된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저자의 신학적 입장이 선명한 복음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점은 감리교회 내에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간의 대결 속에서 실종되었던 감리교리의 중심을 세우려 한 것으로 평가된다.

“어느 때보다도 감리교회의 정체성과 소명이 흔들리고 있는 이 때에 감리교의 뿌리 경험을 되돌아 보게 하는 지침이 될 것이다”

저자가 잘 지적한 대로, 종교의 강령 제 8조에 해당하는 자유의지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대로 자유의지론에 관한 교리가 아니다. 도리어 이 부분은 선행적 은혜에 대한 교리로 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선행적 은혜를 “우리 앞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표현한다. 이 선행하는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선한 의지는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대로 은혜에 대립하는 의미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선행적 은혜로 주어지는 자유의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제 8조는 그냥 자유의지 보다는 선행적 은혜로 주어지는 자유의지라고 해야 정확한 교리이다.
물론 저자의 선행적 은혜에 대한 이해는 웨슬리 자신의 이해보다 더 협소한 면이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선행적 은혜는 인간의 죄와 무능력을 깨우치는 소극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적 은혜는 적극적 기능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자발적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한 감리교의 ‘응답가능한 은혜’(responsible grace)로서의 선행적 은혜의 대안이다.
저자가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 내용 중에 감리교 구원론에서의 칭의의 중요성이다. 그동안 종교개혁의 전통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감리교 신학은 칭의보다는 성화에 강조를 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보니까 구원론에서 칭의가 차지하고 있는 기반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다시 칭의론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성화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칭의론에 근거한 성화의 목표를 제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자의 표현 중에 웨슬리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몇가지를 제외한다면, 저자의 책은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양극에 치우치지 않고 감리교교리의 중심을 잡는데 나름대로의 공헌을 한 것이라 평가된다. 저자는 “칭의는 필연적으로 신생과 성화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말은 감리교 구원이해의 희망사항으로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웨슬리 마저도 칭의가 필연적으로 성화로 인도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도리어 칭의가 필연적으로 성화로 나아가지 않으므로, 웨슬리는 칭의를 앞서는 성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성화가 없는 칭의만으로서는 구원이 불완전함도 함께 지적한 것이다.
이점에서 저자의 또다른 주장, 곧 “원칙적으로 구원이란 이신칭의의 사건이다.” 라는 것도 감리교 구원이해에 있어서 한 차원을 강조한 말이다. 웨슬리의 표현으로 쓰자면, 칭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또는 하나님의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것이다. 성화는 신분상의 또는 관계적인 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삶으로의 실질적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게 된다. 이점에서 감리교 구원론의 특징은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을 수용하면서도, 구원을 칭의에 국한시키지 않고, 성화와 완전을 포괄함으로써 웨슬리가 말한 대로 ‘위대한 구원’(great salvation)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김진두 목사의 ‘우리의 교리’는 저자의 표현대로 감리교회의 종파적인 교리가 아니라, 웨슬리의 보편적 정신, 보편적 사랑, 보편적 구원의 에토스에 충실하려 한다. 이로써 교회일치에 공헌하는 ‘브릿지 교회’로서의 감리교회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리교회의 정체성과 소명이 흔들리고 있는 이 때에, 이 책이 많은 감리교 목회자들과 성도들, 나아가 신학도들에게 감리교의 뿌리 경험을 되돌아 보게 하는 지침이 될 것이라 믿어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박종천 목사
·감신대 교수






타·임·즈·추·천·도·서


「새끼개」·「어미개」

지난 봄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한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아이들 곁으로 떠나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던 박기범이라는 동화작가가 있었다.
박기범은 4년 전 <문제아>라는 책으로 아동문학계에 탄탄한 주제의식과 작가정신을 가진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박기범이 <새끼개>와 <어미개>라는 책을 동시에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아이들은 새끼 개가 예뻐서 안고, 비행기도 태워 주고, 욕조에 넣고 수영도 가르쳐주지만 새끼 개는 그저 무섭고 힘들 뿐이다. 아이의 손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으르렁대기도 하고, 멀찍이 피해 다니며 ‘싫다’고 얘기하지만 아이들은 새끼 개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만 생각한다. 두려움에 떠는 새끼 개는 더 사나워져만 가고, 어느새 ‘성질 나쁘고 사나운 개’라는 낙인이 찍혀, 다시 팔려왔던 애견 센터로 돌아가게 된다. 하늘이 파랗게 좋은 날, 철창문을 박차고 도망나온 새끼 개는 생전 처음 달콤한 자유를 맛본다. 그렇게 떠돌아다니기를 며칠, 새끼 개는 자기도 모르게 옛 꼬마 주인들이 사는 아파트 쪽으로 향하고, 멀리서 아이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간다. 그러나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승용차가 새끼 개를 덮치고, 개는 납작하게 깔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간다. 길 건너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지 못하고, 새끼 개 대신에 새로 산 강아지를 꼭 안은 채, 평화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작가의 시선은, 그 어떤 설명보다 웅변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쓰고 난 후, 한동안 마음앓이를 했다고 고백한다. 그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 한줄 한줄 쓰기 시작한 작품이 후속작인 <어미개>이다.
<새끼개>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진 독자라면 <어미개>를 읽고 마음을 달래보자. 독거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개 ‘감자’는 해마다 봄가을로 새끼를 낳는다. 밤새 진통을 하고, 한 마리 한 마리를 힘겹게 낳은 뒤, 정성껏 핥아 젖을 물린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감자는 제 새끼들을 개장수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할머니 혼자서 새끼들을 다 키울 수 없는 노릇이니까. 새끼들과 헤어지고 나면 감자는 한동안 슬픈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감자는 어김없이 새끼를 갖고, 마찬가지로 힘들게 낳은 새끼들을 다시 떼이는 일을 반복한다. 아이들은 말할 것이다. 감자는 참 바보 같다고……. 떼일 줄 알면서도 자꾸만 새끼를 낳는다고……. 자기 몸이 아프면서도 새끼들만 보듬는다고…….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어미 개 ‘감자’를 통해, 그리고, 그 위에 중첩된 독거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 겪게 되는 수많은 만남의 소중함과 이어지는 이별의 쓸쓸함을 말하고 있다. 어미의 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의 경이로움, 한없이 보듬어주기만 하는 어미의 내리사랑, 그리고 그 이면에 스며든 외로움의 단면들은 마음 한구석에 깊은 파장을 일으키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어린이도서관 두껍아두껍아 관장 김현아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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