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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독교의 본질과 영성1

= 글 싣는 순서 =
1. 최근 영성운동의 흐름
2. 기독교의 본질과 영성1
3. 기독교의 본질과 영성2
4. 공동체와 영성1-동광원
5. 공동체와 영성2-은성수도원
6. 공동체와 영성3-예수원
7. 공동체와 영성4-디아코니아수녀회
8. 공동체와 영성5-카리스마타
9. 영성 프로그램-에니어그램
10. 오늘의 목회 현장과 영성




동방교회의 전통과 영성

박효섭 목사

·괴정교회 담임
·경남 거제도 예수기도원 원장


1. 하나님을 찾아서 떠남

출발부터 늦어진 신학의 길을 중도에서 잃어버리고, 십 수년을 방황하다가 다시돌아와 어찌 어찌해서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애가 탈 지경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어들은 선후배들의 푸념 따위를 근거로 하여, 부흥사 흉내도 냈다가, 정치 판에 줄서기도 했다가, 급진적 사회 운동가도 되었다가, 성장주의의 신봉자도 되었다가, 굴절된 신비가도 되었다가, 학자연하는 자유주의자도 되었다가, 온갖 종교의 영성을 한 데 아우르는 구루나 선사가 되어보기도 했다가 하는 사이에, 공허한 정열은 식어 내리고, 눈 먼 영혼 또한 황폐해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 자기 동일성의 균열이, 본래적 그리스도교 전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온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보다 전통과 가까운 교회들의 신앙과 영성의 길을 찾아가, 나름대로 하나님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오랜 영적
여정을 거쳐, 마침내 동방 전통의 크리스처니티에서 본래적 크리스천 신앙과 영성에 가장 가까운 보화들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음
동방정교 신앙 전통의 중심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자리하고 계십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히 고백되는 신조가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이 경험하며 “살아야 할” 존재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성 삼위 세 위격이 끊임없는 사랑의 운동 안에서 서로에게 머무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도, 성자의 지위(양자)에서 거룩한 위격들과 사랑의 운동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되신 하나님 안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되는 길(성 아타나시우스)을 얻고, 하나님이 되라는 초대(성 대 바실)에 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화인 테오시스, 즉 하나님이 되는 길이라 합니다.
교회가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 양성론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던 것은, 이것이 무너질 때 신화의 길이 막힐 것이기 때문이었고,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그리스도 상태에서 하느님과 일치, 연합하는 은총의 지복을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이 된다던가, 신화 한다던가 하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과 에너지를 구분하는 빛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성 그레고리 팔라마스).
하나님과의 연합은 본질로서가 아니라 에너지와의 일치이므로, 범신론에서와 같이창조자와 피조물이 혼합되거나 흡수되는 게 아니라, 인격적 특성을 잃는 일없이 자발적 사랑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결합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은 자신 안에 성 삼위일체를 표현하게 됩니다(고백자 성 막시무스).
이렇게 신화의 길을 수행하는 영성을 헤지카즘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방 영성 전통의 핵심이 됩니다. 헤지카즘이란 헤지키아 영성을 가리키며, 헤지키아란 고요와 적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헤지카즘 영성은 동방 신학의 특징인 부정주의 신학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에 맞추어 재단할 수 없는 전적으로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알 수 없는 분으로 남아계십니다. 이 알 수 없는 분을 알지 못함에 의하여 아는 것을 부정주의라 하는데, 헤지카즘 영성을 추구하는 헤지카스트들은, 모든 사념과 상상과 기억과 추론을 벗어난 고요와 적정의 상태에서, 오직 사랑의 능력에 의하여, 삼위일체적 참여로서 이 알 수 없는 하느님을 알고자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방 전통에서 신학자란 사변가가 아니라 신비가에게 주는 명예로운 칭호입니다. 신비가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헤지카즘 영성을 수련하는 기도 방법을 예수기도라고 합니다.
예수기도란 예수의 이름을 짧은 단 마디 기도 말과 결합하여 입으로나 마음으로 끊임없이 되뇌이며 반복하는 기도로서, 일찍이 4세기경부터 사막 수도자들에 의하여 그 기초가 놓여졌는데, 내적 통회의 슬픔을 주조로 하여 끊임없이 기도 말을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현존과 일치하여 헤지키아에 이르는 것입니다.
5세기와 와서, 이런 전통을 계승하여 처음 예수 기도를 가르친 것으로 보이는 포티케의 성 디아도코스는, 예수기도야 말로 사람이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리스도 상태에서 ‘하나님을 닮는 기도’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예수기도를 통하여 헤지키아에 이르고, 헤지키아 속에서 하느님과 삼위일체적 사랑의 친밀 관계를 살아가는 것. 내가 동방 전통에서 배운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영성이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찾고 돌아옴
이제 나는 하나님을 찾아서 아무 데도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에 참여하여 빛과 고요와 평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참으로 알며,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 나는 성 요한 웨슬리(!)와도 더 깊이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참으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고, 진정한 감리교인이 되며, 진정한 한국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미케 하는 온갖 “견”을 털어 버리고 “본”으로 돌아 올 때, 비로소 보는 눈이 열린다는 이치를 깨닫는데, 아아, 꼬박 서른 다섯 해가 걸린 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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