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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뵈온 아버지를 통해 목회의 길로 부르신 하나님

박효성 목사(뉴욕한인제일교회)




박효성 목사의 부친은 박재근 목사이다. 박 목사가 청소년기였던 50년대에 박재근 목사는 천안병천교회에서 시무하다 수복지구인 철원에 있는 어느 교회에 파송 받았다. 당시 식구는 7명이었다. 교회는 파송을 받아온 전도사를 다른 교회로 가라고 요구했다. 7식구를 교회에서 먹여 살리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포천의 가산교회에서 기도하던 어느 권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 그가 무작정 철원엘 와서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면서 “굶어도 함께 굶고 먹어도 같이 먹읍시다” 했다. 아버지 박 목사의 임지가 포천지방 가산교회로 옮겨지기도 했다.
박 목사의 부친 네 형제는 모두 목회자가 되었다. 큰 아버지는 부흥사 박재봉 목사, 둘째가 박재근 목사, 셋째 박재곤 목사, 넷째가 음악전공하고 캐나다에 살고 있는 박재훈 목사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이 아들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목사가 되라고 기도했단다.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된건지 4형제 모두 목사가 되었다. 막내 박재훈 목사는 처음부터 목회자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로로서 영락교회에서 지휘를 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하고 다시 캐나다로 이민을 하여 신앙생활 하던 중 60세에 늦깎이로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가난의 비린내를 결코 털어낼 수 없었던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박 목사, 어린시절 소원은 돈 많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소원은 특별히 그의 어머니의 소원이기도 했다. 청양 정산에 있는 정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마치고 신학교(대전감리교신학대학-현 목원대학교신학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렇게도 신학교를 가지 않겠다던 그가 고3때 소명을 받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학교를 가게 되었다. 졸업 후 “젊어서 보다 사나이다운 경험을 하자”는 생각으로 해병대 장교(해간48기)를 지원 했다. 74년 5월 부친 박재근 목사가 별세를 하고 그해 12월에 4년(46개월)을 복무하고 제대를 한다.
제대 후 직장을 잡으려고 애쓰던 어느 날 지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 그에게 성경책을 주시면서 “효성아 이것 받아라” 하는 것이었다. 이는 목회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목회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간 그였지만 군대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안받겠습니다.” 아버지는 또 말한다. 그는 또 거절.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했다. 마지막까지 안받겠다고 하다가 그만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꿈을 깼다.
그 꿈이 그에게는 인생을 바꾸어 놓은 터닝 포인트였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오! 주님, 당신이 가라 하시는 곳이면 그 어디든 가겠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가라하시면 가겠습니다.” 그는 새롭게 자신을 헌신했다. 이후 그는 75년 4월 19일 중부연회 인천서지방 대부 중앙교회에 첫 파송되어 어머님과 함께 대부도를 들어갔다. 지금도 박목사는 목회가 어렵고 낙심될 때 아버지의 음성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소명을 깨우쳐주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목사는 대부도에서 3년동안 목회(대부중앙교회)를 하던 중에 77년 강희숙 사모(53세)와 중매로 결혼을 했다. 78년 2월17일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창영교회) 3월17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미주 이민목회는 강희숙 사모가 간호사(RN)로 미국으로 취업 이민을 오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오늘 그의 목회의 이면에는 강희숙 사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민목회에서, 특별히 이민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생활고이다. 이 부분을 사모가 담당했다. 강희숙 사모는 당시 간호사로 병원 야간 근무를 했다. 이때 너무나 큰 고생을 시켜서 그는 늘 아내에게 미안하다. 행복한 부부는 둘 사이의 독립성을 자랑하기보다는 평생 상호의존성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늘 빚진 마음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10여년 전엔 일어서지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을 만큼 여러 달을 고생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이민 초기 목회시절의 그 고생으로 아내는 건강한 편이 못 된다.
큰 아들 대용(다니엘)과 둘째인 대현(사무엘)은 드루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다. 금년에 졸업하는 대용은 지금 참사랑교회(문영길 목사) 전도사로 2세를 위하여 목회하고 있다. 대현은 내년에 졸업한다. 대현은 지금 아버지를 도와 뉴욕한인제일교회에서 청소년목회와 EM(English Ministry)사역을 하고 있다. 박 목사가 감사한 것은 두 아들 모두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2세 목회자가 없는 이때에 목회를 하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더구나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감리교회의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 연합감리교회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자리들이 있지만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겠단다.
“아버지! 내 삶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는 아마도 아들에게서 이런 고백을 직접 듣는 아버지이리라.


 

남재영  verita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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