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
교회의 학교사업을 위해 기도하자

기독교계통의 중, 고등학교와 대학이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하지 않아도 재단과 학교와의 갈등, 재정문제, 인사의 부조리, 미션스쿨의 변질 등으로 고심하는데 사립학교법 개정안으로 인해 교회와 교단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물론 일반 교육계는 말 할 것도 없이 시끄럽다. 지난 7일은 1천7백38개 사립학교가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결의까지 하였다. 전국 9천8백25학교 가운데 사립학교는 총 1천9백40개이다. 그 중에 대학의 80%, 전문대의 90%, 고등학교의 47%, 중학교의 24%, 초등학교의 1.4%가 사립학교이다. 사립학교 가운데 종교계통은 5백여 개로 개신교가 3백50개, 천주교가 57개, 불교는 26개교를 차지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 침해로 사학이 흔들리거나 학교의 문을 닫는 혼란과 투쟁이 이어질 것이다. 이 가운데 극심한 피해를 보는 것은 어린 학생들이다. 국가경쟁력뿐만 아니라 세계경쟁력에도 차질을 가져온다.
사립학교 개정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개방형 이사제로 이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3분의 1을 학교운영위원회(또는 대학평위원회)가 추천하는 인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둘째는 학교운영위원회(대학은 대학평위원회)가 학교경영과 발전계획에 심의기구로 참여하는 일이다. 셋째는 학교 내의 임의조직인 교사회(교수회), 학부모회, 학생회, 직원회를 법제화하는 일이다. 결국 사학법 개정안은 법제화된 학교의 기본조직이 의사심의, 결정하는 일에 참여하고, 그래야만 학교경영의 투명성, 민주성 그리고 공공성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하여 교회는 침묵 할 수 없다. 이 땅에 기독교학교가 공헌한 일을 역사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교회는 왜 이러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반성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학교로서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하고 그 뜻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 중에 우리교회와 교단이 학교사업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할 일은 첫째, 학원선교의 철학이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회의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넘어 주간학교(Day School)로 확장된 기독교육이다. 둘째, 재정의 뒷받침이다. 재정의 이유로 학교를 장악하여서는 안 된다. 이사들은 재정의 의무와 헌신이 필요하다. 기독교학교의 재정은 선교로써 씨 뿌리는 일이다. 이익을 위한 투자가 아님을 명심하여야 한다. 셋째, 예수의 정신으로 학교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대학진학(실업계는 취업)으로 명문고가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 갈등이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넘어 기독교학교이기에 명문학교가 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넷째, 신앙심과 실력 있는 교사, 교수, 직원을 정직하게 채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율적 책임과 헌신을 위해 재정으로 뒷받침하여야 한다. 다섯째, 교목실의 신앙프로그램이 교리화와 교세확장의 안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에서의 선교는 기독교적 민주시민의 양성이기에 보다 나은 인성교육과 다양한 채플과 성경교육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와 교단은 교목실을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기도와 실천은 교회의 학원선교를 위한 다짐이며 동시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반대를 시사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는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오고 있다.
성경은 세 가지 추수감사절을 가르치고 있다. 곧 여름 곡물인 밀과 보리의 수확기에 드리는 맥추절, 그보다 오십일 전 수확의 첫 곡식단을 바쳤던 초실절, 그리고 포도나 감람 등의 과실 수확기의 수장절(초막절)이 그것이다. 초막절은 유월절과 함께 성경시대의 큰 절기였으며, 지금도 유대인들은 가장 큰 기쁨의 절기로 지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초막절이 우리의 전통 한가위와 날짜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은 1백2명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하여 땅을 일구어 농사짓고 추수하여 1621년 처음으로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기인하였다. 그 후 간간이 지켜오던 추수감사절은 링컨 대통령 때에 전국적인 행사로 확장되었고, 1941년에 이르기까지는 추수기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의 연례적인 선포에 따라 해마다 각기 달랐던 것을, 194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국 의회가 대통령과 합의하여 11월 넷째 목요일로 확정했다.
한국 기독교 최초의 월간지인 「신학월보」에는 1902년 양력 10월 5일에 추수감사절을 드린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2년 후인 1904년에는 장로교의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해 지켰다. 오늘의 11월 셋째 주일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감안, 1914년부터 각 교파가 합의하여 11월 셋째 주 수요일에 지키다가 얼마 후 수요일을 주일로 바꾸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추수감사절 날짜는 일정하지 않다. 그리고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를 따라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나라도 흔치 않다.
2004년 올해만 해도 민족 명절인 한가위는 9월 28일이고, 교회에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11월 21일이어서 이 둘 사이의 기간이 무려 2개월 가까이 차이난다. 게다가 11월 7일이 입동이어서 올해는 추수감사절을 지키기에는 더욱 추위를 느낀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 성탄절 등 연말 행사와 너무 바투 겹치는 경향이 있는 점도 목회 계획의 균형상 감안할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추수기와 맞지 않는 추수감사절 날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추수감사절 날짜를 우리 추수기와 맞게 신중히 검토하여 다시 제정할 수 있기를 제언한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리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