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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봉사

예배와 섬김(Service) 그리고 봉사(Service)는 같은 의미이다. 섬김이 하나님께라면 봉사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복지학에서 중요한 단어는 봉사(Service), 돌봄(Care), 나눔(Share), 치유(Healing)이다.
성도를 온전케하는 이유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엡4:12) 하였다.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는 사람은 봉사를 잘 하여야 하며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였다.
예배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봉사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인간학이요, 인간학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예배와 봉사를 병행하는 것이 성경적이요 신앙적인 것이다. 교인은 봉사하면서 신앙이 자라는 것이다. 성숙한 교인은 봉사할 줄 아는 것이다. 시간이나 몸으로나 물질로나 지식으로나 기술로나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활용하지 않으면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
특별히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봉사의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의 신임도가 좋아지며 간접 직접 전도의 문이 열려진다. 국가가 선진국가가 되는 것도 복지문제가 해결되어야 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성장이 되고 도로포장이 잘 되고 교육수준을 높여도 복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교회는 신앙의 문제와 봉사의 문제를 잘 해결하면 개인, 가정, 교회, 국가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실 때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눅10:36, 37) 우리에게는 이웃이 되어야 할 많은 사람이 있다. 이러한 자들을 찾아가서 자비를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능 부정사태를 보는 우리의 책임


최근 우리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변화과정을 경험하는 중에,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어린 학생들에 의하여 집단적이고 계획적으로 저질러진 대학수학능력자격시험 부정사태를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자격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입학자격을 분별하는 기준을 측정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국가관리시험제도로, 공정하고 엄정한 관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부정의 실체가 들어나고 나니, 온 국민들은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사회 불신과 염려로 인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이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문제의식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시험관리를 맡은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들의 안이하고 부실한 시험관리를 지적할 수 있다. 일단 학생들이 어떤 시험부정행위도 할 수 없도록 사전에 치밀한 대책을 세우고 철저하게 실무 단속을 했어야 한다. 고사장에 입실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개인전화를 자유롭게 휴대할 수 있었는지, 또 고사장 감독관들이 고사장에서 전화를 작동시키는 행위를 왜 잡아내지 못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전화휴대와 전파사용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고사장 안에서까지 보장될 수는 없는 일이다. 고사장에는 의복 외에 오직 필기구만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행위의 가능성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리 대처하지 않고 허술하게 관리했다는 것은 결국 점수만능의 사회에서 시험부정을 방치 내지는 방조한 결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오늘의 젊은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엄청난 도덕해이현상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젊은이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응시학생 당사자들은 물론 선배대학생, 후배재학생, 학원원장과 교사, 심지어 학부모까지 총체적으로 부정행위에 개입되었고 또 사건마다 돈거래가 있었다고 하니 그 도덕적 해이는 실로 심각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다수 지도자와 어른들이 보여주고 있는 부정과 비리의 부도덕한 모습의 투영현상(投影現象)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 기성세대들, 그리고 부모와 스승들이 좀더 강직하고 정직하게, 참되고 옳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 각 분야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의, 거짓, 부패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금번 수능부정사태를 보는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법과 정의에 따라 진리의 파수꾼, 양심의 보루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이 시대의 교회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먼저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감리교회는 2년 전부터 ‘정직운동’을 주창해 왔고 많은 교회들이 동참하고 있다. 먼저 우리 크리스찬들이 철저히 정직해지고 지도자들이 정직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이 사회의 양심회복과 도덕재무장에 능동적으로 앞장서야 할 것이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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