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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는 여전히 말이 없다

영국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의 법칙을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써 설명하였다. 그는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 이라고 한 말을 상기시켰다. 매년 겪게 되는 나일 강의 범람이 오히려 천문학, 기하학, 건축학 등의 발전을 이룩하게 한 것이다. 즉, 토인비는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인류 역사를 발전시킨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쓰나미로 고통당하는 이웃에 대한 관심은 지구 공동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가 8억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약속하고 이어서 독일, 일본, 미국 순으로 원조에 나서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5억불이 넘는 기부금을 약속했다. 많은 국가들이 쓰나미 지진 피해 국가들에 원조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의 입장을 대부분 바꾸고 있다. 미국은 경제 대국에 걸맞지 않게 1천5백만 달러를 약속했다가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더구나 영국보다 인색하다는 비판에 지원액을 3억5천만 달러로 늘렸다.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이라는 우리 정부도 처음에는 6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가 이를 2백만 달러로 다시 늘리더니 여론에 영향을 받아 5천만 달러까지 액수를 높였다.


이와 같이 각 국가들이 앞 다투어 기부금을 높이는 이유는 바로 후원의 규모가 지구 공동체 안에서 자국의 국제적 신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국제적 신뢰는 자국의 명예를 높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공동체를 선도하는 주자라는 리더십도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이번 쓰나미의 도전이 인류를 발전시키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지구 공동체의 응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응전은 국가적 책임을 묻거나, 정파를 따지고, 이데올로기나 신조를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쓰나미는 말이 없이 도전을 하였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인류적 언어와 행동으로써의 응전이다. 그 응전은 우리에게 숭고하게 남겨진 사랑의 정신으로 시작이 된다. 그 사랑으로 지구적 아픔을 극복하는 것만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며 역사를 발전시키는 정신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감리교 장학재단을 잘 키워보자


우리 한국감리교회가 유지재단(종교법인)을 중심으로 은급재단, 사회복지재단, 사회복지관재단, 장학재단 등 다양한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면서 영혼구원, 사회봉사, 교육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 중에도 뒤늦게 출범한 장학재단이 22억원의 자산을 조성한 가운데 의욕적인 장기계획을 세우고, 국내외 고등교육과정에 있는 장래성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는 여기에 지대한 관심을 두면서, 앞으로 이 장학재단이 더욱 내실있게 발전하여 우리 교회의 미래를 열어갈 희망의 실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도자 양성은 어떤 사회집단을 막론하고 그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더욱이 우리 교회에 있어서 다음 세대의 교회를 책임지고 나갈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과제인가 하는 것은 다시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큰 관심과 투자를 통해서 목회, 교육, 선교, 사회봉사, 영성과 신학, 교회정치와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일꾼들을 양성해야 하고, 더 나가서 세계교회운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지도자 양성과 세속사회 속에 기독교적 지도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평신도 지도자를 배출하고 후원하는 일에 대하여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 자치(自治), 자전(自傳), 자급(自給)을 원칙으로 하는 ‘네비어스 선교정책(The Nevius Plan)’을 적용하여 급속히 성장하고 토착화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성공적 성장역사 이면에는 자치와 자전의 능력을 갖춘 유능한 목회지도자들의 등장과 그 공헌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세기 1970-90년대 30여 년간 한국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회의 주역들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황폐한 상황에서 구호물자 옷을 입고, 미국교회에서 헌금해서 보내준 장학금을 받아가면서 민족구원의 꿈을 품고 공부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전후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신학자들은 외국유학의 꿈도 꿀 수 없었던 당시에 미국 감리교회에서 제공해 준 십자군장학금(Crusade Scholarship)과 같은 학비 지원을 받고 양성된 인재들이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빚 갚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 대비하는 책임의식 속에서 새 시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제공할 물질적 능력도 있고, 키워야 할 인적자원도 풍부하다. 그러므로 3개 신학대학원의 석사, 박사과정에 우수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학생을 유치하여 유능한 국내파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과, 해외에서 신학교육을 받아 한국교회에 접목할 해외파 고급인력들을 적극 지원하는 일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법인자산 22억원으로는 그 이자과실이 빈약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효율적 재단운영에는 적어도 1백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금의 조성을 위해 많은 교회와 독지가들의 참여가 요청된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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