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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사 직능과 사업 강화되어야 / 평안과 편안

감리사 직능과 사업 강화되어야


2월은 우리 한국감리교회의 전국 206개 지방회가 일제히 열리는 분주한 시기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감리교회의 행정조직 중 감독제도와 감리사제도는 매우 고유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감리사가 치리하는 ‘지방회’(District Conference)는 선교, 교육, 봉사, 평신도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기초행정 자치단체이며, 사업시행 단위단체이다. 따라서 교회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 기능이 강화되고, 지방사업이 활성화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감리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지방회가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감리사의 직능이 매우 약화되어 있는가 하면, 지방을 구성하는 교회 수가 너무 적고 예산이 부족하여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점점 인적, 재정적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말로 지방의 위상과 그 기능을 살려야 할 때라고 보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감리사의 직능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감리사’(Superintendent)는 감리교회의 권력주체인 감독직(Episcopacy)을 형성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기본 행정집행자로서, 교회의 영적 행정적 지도, 관리, 감독을 맡아서 수행하는 감리교회 성직의 꽃이다. 사실 그 동안 감리교회의 정체성과 행정적 구심력이 약화된 근본원인이 감리사의 직능이 너무 축소되고 지방회 구성요건이 너무 약화되어진데 있다고 해도 잘못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미 연합감리교회처럼 감리사 6년 전임제, 파송제, 혹은 5-80교회의 대형지방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감리사제도는 현행 2년 겸임제를 계속 유지하더라도, 감리사의 구역회(Charge Conference) 주재권을 절대 강화함으로써 인사 및 예결산처리를 비롯하여 교회의 제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산의 변칙관리와 소위 ‘분식회계’를 없애고 부담금의 올바른 납부와 미자립교회 균형지원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감리사가 교회의 신령상 형편과 인사, 재정, 재산관리상태를 파악하여 효율적으로 지도, 감독할 수 없다면, 감리교회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
더 나아가 각 지방의 사업수행능력이 발전되고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방은 최소 30교회 이상 60여 교회까지로 구성되어야 하고, 지방과 연회가 자꾸 소규모로 분할되어 그 힘이 약화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각 연회는 지방의 사업기능을 가로채어 직접 시행하기 보다는 지방을 적극 지원해주면서 그것을 지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가며, 또한 정책수립과 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본부는 올바른 정책과 대안을 정확하게 제시해주고, 프로그램 개발과 각종 지도자 발굴, 배치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감리교회의 통합적 목표 추구와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각 지방의 특성화 발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이다.


 


평안(平安)과 편안(便安)


평안과 편안의 한자를 보면 평안은 평평할 ‘평’자와 편안할 ‘안’자를 쓰고 편안은 치우칠 ‘편’자와 편안할 ‘안’자를 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고 한다. 요한복음 14장29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고 로마서 8장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다.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 쓸데없는 생각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예전에 비하면 편안하기 그지없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며, 만들기에 시간 걸리는 음식들도 다 사서 먹을 수 있다. 얼마나 편안한가! 편안한 일들을 찾으면 수없이 많다. 눈이 수북이 쌓인 길을 편안히 가려면 누군가가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속 평안은 편안하게 가는 길과는 별개다. 약은 돈 주고 사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쾌락은 돈으로 살 수 있으나 기쁨은 돈 주고 못 사듯이 편안은 돈 주고 해결될지 몰라도 평안은 돈으로는 안 된다. 사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예를 들면 건강, 기쁨, 맑은 공기, 사랑, 용서, 평안과 같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편안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 편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편안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 쉼과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돈, 재물, 명예, 권세 어느 하나도 평안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재벌 회사의 사장은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도 자살하고 말았다. 진정한 의미의 참 행복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이기 때문이다.
탕자는 돈 가지고 나가서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편안했지만 그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편안하고 복 받는다고 생각하면 어려움이 올 때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편안보다는 평안을 추수하였음을 볼 수 있다. 궁중에 편안히 살 수 있었는데 동족의 아픔을 바라보며 평안을 느낄 수 없었기에 고통을 택하였던 모세와 에스더, 편안만 생각했더라면 큰일을 저지를 뻔한 요셉과 다니엘, 돈이 많아 편안히 잘 살 수 있었는데도 평안을 찾기 위해 명예, 재물을 버린 삭개오 등 많은 성경의 인물들과 국내외 애국자들, 선교사들도 편안이 아니라 평안을 택하고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이다.
3.1절을 맞으며 일신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민족의 평안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신앙이 오늘 감리교회에 희망을 주는 역사로 살아나길 기도한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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