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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모자

“정우야, 왜 밥 안 먹어? 맛이 없어?”
“…”


“아침도 안 먹고.… 배 안 고파?”
“…”


평소에는 한 순간도 잠자코 있지 못하는 녀석이 며칠째 입을 꾹 닫고 밥도 먹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면서, 정우는 우리 집에 맡겨졌다.
정우 할아버지 문 집사님은 병원에 누워서도 아내와 함께 온통 정우 걱정뿐이다. 사실 문 집사님은 정우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다. 정우는 문 집사의 외동딸 은혜씨가 일하는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였다.


어느 날 아침, 정우의 손을 끌고 유치원에 데려다 준 아빠는 다시 정우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끝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은혜는 며칠 동안 정우를 데리고 지내다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문 집사님 내외는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정우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느닷없이 다섯 살배기를 맡아 키운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을 그만 두고 아내의 벌이에 의지하는 문 집사님의 형편으로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둥지에서 떨어진 작은 새처럼 안쓰러운 어린 것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문 집사는 손수 아이를 씻기고 먹이며 돌보았다.


일년 동안 정우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나이보다 훨씬 조숙한 표정으로 힐끔힐끔 눈치를 보던 아이어른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문 집사님과 함께 골목에 나서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다는 듯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골목대장 노릇까지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떨어지자 아이는 금세 풀이 죽었다. 잘 먹지도 놀지도 않고, 말수도 확 줄었다. 날이 저물면 잠잘 데부터 찾았다. 정우는 늘 동그랗게 몸을 오그리고 자는데, 잠드는 동안 정우가 죽기 살기로 꼭 붙들고 있는 것이 할아버지의 모자다. 테두리가 낡아 너덜너덜해진 모자를 정우는 꼭 끌어안고 다니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잘 때는 오물오물 젖 먹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밥맛도 없고 잠도 잘 안 와요. 그놈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고….”
정우가 할아버지 모자를 안고 잠드는 동안, 문 집사님도 온통 정우 생각 뿐이다. 피보다도 진하고 뜨거운 사랑, 그 사랑이 예순 다섯 살의 할아버지와 여섯 살의 정우 사이에서 끝도 없이 깊어가고 있다.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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