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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가정 돌아보기

목회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족들에게 참 인색한 것이다. 교인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하려고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에 사모의 7대 고민 중 1위는 남편과의 대화단절이라 했다.

사실 남자는 하루 2만 마디를 여자는 하루 4-5만 마디를 해야 만족하다고 하는데,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심방에서, 회의에서, 설교에서 이미 2만 마디를 넘기고 들어오니까 집에 들어오면 말하기 싫어지고, 하루 종일 입조심하고 남편만 기다린 아내는 그때부터 말을 시작해야 하고, 뭐 그런다는 것이다.

어째든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위해서는 시간도 잘 내지만, 가족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 교인들과는 이야기도 잘 나누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입을 굳게 다문다. 그러다가 또 교인이 집에 찾아오면 금방 사랑과 웃음으로 대한다. 교인들이 돌아가면 가족들에게는 명령과 엄한 얼굴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늘 같이 살고 얼굴을 마주 보는데, 무슨 다른 노력이 필요하냐?’ 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러면서 신경질은 집안에서만 단독 드리블(dribble)이다. 이런 목회자의 가정이 어찌 행복하겠는가? 교인들의 가정도 살아야겠지만, 목회자의 가정이 먼저 살아야 한다. “지금 가장 위기에 처한 가정은 목회자의 가정이다.” 라고 말하면? 물론 지나친 말이다.

그런데 흔히 목회자 가정은 어항속의 금붕어에 비유된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훤하게 그 속이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고, 따라서 그 가족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을 가질 새 없이 언제나 교인들 시선의 중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신앙적 모범과 완전을 요구 당한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교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유리상자속이다. 자녀들은 어떻고, 사모는 어쩌고저쩌고 한다. 모든 것이 공개되길 바라고 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기에 언제나 밖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하는 삶이다. 시쳇말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같은 스타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그래 그것은 좀 억지다.

그러면 어떤 사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고희를 넘긴 노 권사님이 사택을 찾아오셨다. 손수 농사를 지은 것이라며 상추와 깻잎, 감자 등을 한 자루 풀어놓으신 것까지는 좋았다. 사모는 사랑이 넘치는 그 권사님이 너무 너무 고마워 미숫가루라도 타 드리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과 노 권사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어젯밤 너의 엄마는 어느 방에서 잤니?" "우리 엄마는 나하고 건넌방에서 잤어요."
"아암! 그래야지. 안방에서 목사님과 날마다 자면, 목사님 건강이 나빠지거든."

부엌에 있던 사모는 하늘이 노래졌다. 그 권사는 유복자를 기른 청상과부로 이런 일로 집에서 며느리를 들볶기로 유명한 권사였다.

이렇듯 목회자 가정은 교인들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며 공개된 삶이기에 상당히 제약을 받으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기에 목회자와 사모들은 성도들의 기대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틈바구니에 끼어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때론 어둡고 깊은 갈등과 다툼이 있지만, 조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눈물의 기도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정말 그렇지요? 하나님!

포천 한샘전원교회 한성수 목사

관리자 전문위원  stigmat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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