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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야 너 갈길을 가라!

초여름이 시작하기 전부터 한참 동안을 내자신 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지 못해 꽤나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유가 어디에서 왔던지 막상 이 화란 놈과 친구를 하게 되면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이 낯설은 불청객 때문에 쩔쩔매게 된다.

수업시간에 쉴새없이 떠드는 녀석들 때문에 화를 내고 혹시 그 당시에 못냈던 화가 있다면 다음에 이자를 붙여서 완전 엉뚱한 곳에서 엉뚱하고 만만한 이슈(간이 작아서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표출한 기억은 거의 없다)에 그 화가 표출되기도 한다.

때로는 나의 화는 풀어야 할 정확한 대상을 찾지 못했을 때 이처럼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이들의 이야기나 이슈를 아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느정도 풀리는 경험을 한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으리라…

심리학에서는 보통 화를 느끼고 표현하는데 두가지의 파괴적인 장애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위 '착한 사람' 콤플렉스, 그리고 이건 내가 만든 말인데 '내숭' 증후군이라고 할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전생애의 목적은 모두에게 착하디 착한 사람되기, 상냥함으로 승부하기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따위 같은 황당한 것들에 두고 있는 부류이다.

따라서 이 내숭 그룹은 끊임없이 연기자처럼 24시간 상냥연기를 해야 살 수 있다. 그들은 결코 그 자신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엄청난 정력을 낭비한다. 이들은 화가 나면 날수록 점점 더 상냥해진다. 그는 단순히 누군가가 그에게 화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에너지는 "잠재적인 적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요된다.

다른 더 큰 장애는 '쓸데 없는 참견을 말아라"는 증후군 소위 감정적 고립주의자 "얼음왕자 얼음공주"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정적 고립주의자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화가 어떤 형태로 표현되든간에, 자신의 무관심 상태에 위협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화를 나타내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화가 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화를 낼 정도로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두 콤플렉스의 경계선을 오가는(BORDER LINE DISORDER)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화를 낸다. 마가복음 11장 15-1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도 화를 내셨다. 하나님을 이용해 장사를 하고 성스러운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면서 신앙의 집을 더럽히는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셨던 분이 아니셨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무작정 맞장구치지 않으셨기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다고 한 것만 말씀하셨다. 여기서의 화나 분노를 소위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학생들과 그 수업시간의 평화를 위해(?) 나의 삶이 이 단계까지 나아가길 간절히 손모아 기도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1:19-20) 

김언영 목사(배화여자대학 교목)

   

 

 

관리자 전문위원  stigmat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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