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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문명 이끄는 선구자 역할 감당해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 정보과학, 즉 IT(information technology)강국으로 꼽히고 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와 같은 시각미디어 앞에서 인간이 아닌 기계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새로운 생활세계의 모습은 언뜻 우리에게 과학 기술의 혁명에 대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듯 IT산업은 ‘속도’와의 경쟁에 뒤처지는 노인보다는 조금 더 미래가 있어 보이는, 희망의 상징이 되는 청춘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미래지향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가진 사상과 인격이 아니라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속도경쟁을 하며 발전하는 미디어의 세계와 비교하여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는 어린이와 젊은이의 숫자보다는 장년과 노인이 더 많다. 심지어 교회 프로그램에 다양한 현대 미디어를 수용하다보면 세대 간에 갈등이 생긴다. 피아노와 오르간 중심의 전통적인 교회음악 대신 빠른 템포와 강한 비트의 청소년 음악을 따라하려는 장년층은 금방 숨이 턱에 차기 마련이다.

반대로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는 찬송가를 부르는 청소년들은 금방 따분해 한다. 십자가 앞에 쳐진 커다란 스크린에 비쳐지는 동영상과 이미지를 보며 청소년들은 환호하지만 장년 교우들은 스크린에 가려있는 십자가를 보지 못함을 내내 아쉬워한다. 전통과 현대를 원만히 연결하기보다 미디어는 오히려 교회 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해꾼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회의 ‘대안 미디어’는 무조건 세상의 IT기술을 교회에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미디어가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차피 복음은 그 시대의 문화적인 옷을 입어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는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문명을 이끄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 있다.

대형교회를 보면 미디어에 적절한 예산을 지출할 수 없는 소형 교회보다도 훨씬 현대 감각의 시각미디어가 세련되게 장치되어 있다. 그러나 설령 이러한 ‘미디어’ 덕에 젊은이들이 모인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의 성장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의사소통의 한 기능을 담당할 뿐이지 그 자체가 복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가 고가의 방송장비와 시각적 미디어를 통하여 ‘감성’을 자극하여도 ‘감동’이 따르지 않으면 결국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되고 만다. 반대로 예산상의 이유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없어서 교회의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 지나치다. 왜냐하면 복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구원의 확신과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대안 미디어는 미디어 자체를 기술적으로 이용하는데 목적을 두지 말고 교회 성원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적 역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징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초월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즉, 상징은 인간의 찰나적 감정에 조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십자가가 ‘십자’의 모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죄의 용서를 드러내듯이 교회의 대안 미디어는 ‘보여주는 것’에서 주의 은혜를 ‘바라는 것’에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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