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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고 윤장호 하사의 고귀한 죽음을 기린다!

아프카니스탄 다산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활동하던 고 윤장호 하사의 고귀한 죽음에 온 국민이 슬픔에 빠졌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평화 재건 활동을 하던 중 테러에 의하여 젊은 인생을 마치게 된 고인에 대하여 국민 뿐 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은 더 슬퍼하였으며 특히 고인이 영생감리교회의 신실한 교인이었기에 우리의 애통함은 더 할 수밖에 없다.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으로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책임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는 분위기다. 평화의 명목으로 파병된 국민 주권에 대하여 여야 모두 한층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기독교 사회단체는 ‘평화’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독교인들이 연대하여 기독교의 평화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나 불운이 아니다. 고인의 영결식에서 선포된 말씀처럼 고인은 폭력에 의해 죽었지만, 고인의 죽음은 우리에게 폭력을 포기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고인의 뜻을 받드는 길인 것이다.

고 윤장호 하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은 운명적인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죽임’은 인간의 책임과 연결이 되어있다. 이 세상에 만연한 ‘죽임의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에 근거한 ‘생명존중’에 있다. 따라서 생명을 해하려는 인간의 폭력에 대한 대답은 궁극적으로는 ‘죽임’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제 적극적인 사랑을 요청하고 있다. 마치 전쟁을 종식하는 것이 ‘무기’가 아니라 ‘평화’이듯이 ‘죽임’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살림’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을 부활로서 승리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순절에 이 세상에서 서로 ‘죽임’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우리의 죄 된 본성과 폭력적인 문명에 대하여 ‘살림’의 생명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간 고 윤장호 하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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