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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자립' 교회는 없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기독교의 브랜드 가치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물론 물질적인 가치를 최고의 척도로 여기는 경제의 브랜드와 같은 맥락으로 기독교를 해석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치는 사회적 또는 정신적 영향력은 결국 기독교의 이미지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모 방송국에서 대형교회들에 대한 비판, 특히 목회자의 호화생활과 교회 건축과정에 나타난 탈법의 과정을 보도함으로써 마치 이것이 온 기독교의 문제인양 오해를 사게 되었으며 일선 교회에서 교인들의 일탈문제도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 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이와 같은 결과는 한국 사회일각에 교회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으며 무엇보다도 교회가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강한 인상을 세상에 심어준 것만은 사실이다.

교회를 물질적 크기로 오해하게끔 만드는 표현중에 ‘미자립’이라는 어구가 있다. 교회의 기준을 자립과 미자립으로 나누는 것이 자칫 세속적인 경제주의에 물든 잘못된 해석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성경 어디에도 미자립이란 용어는 쓰이지 않는다. 교회의 성장은 교인의 수와 재정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힘, 목회자의 리더쉽,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역동적인 삶에 그 중심이 있는 것이다. 물론 교단 행정의 차원에서 재정의 크기가 일종의 지표는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자립 교회’ 보다는 오히려 ‘선교교회’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여기서 선교는 개체교회 차원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협력하는 의미가 된다. 교회가 다 선교에 힘쓸 일이지만 그래도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운영에 있어서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모든 교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선교에 협력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웃 교회의 목회자와 가족이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누가 먼저 가서 협력하여야 할 것인가?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며 그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와 목회자는 서로 협력하여야 할 동반자가 아닌가?

‘변화의 종교’, 기독교! 그 변화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경제적인 번영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이 없으면 그것이 미자립이고 공허하게 되는 것이다. 온 교회가 선교에 전념하는 한,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세상의 가치와 바꿀 수 없다는 기독교의 정신으로 살아있는 한, 그리고 모든 교회가 이일이 가장 소중하다고 서로 격려하고 인정하여 줄 때, 그 때 교회는 교회답다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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