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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생활과 사상을 엿보는 즐거움내 생애 베스트셀러 ② 윤춘병 감독

슈바이처에게 생명 존엄·지성인의 실천력 증진 배워


   
'나의 생애와 사상'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문예출판사
내가 책을 많이 읽은 때는 8.15해방 전 후다. 일정말년에는 평양부립도서관(平壤府立圖書館)에서 주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탐독하였고, 해방 후 월남에서는 신학 철학 내지 한국고전 등을 읽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 키에르케고루(Kierkegaard, Soren Aabye)의 <철학서적>, 육당 최남선 <전집> 등 한국학 전문 서적들을 두루 읽었다. 지금 이 책들은 감신대 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 시절에 동서 위인들의 전기와 자서전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 아직까지도 감동이 남아있는 것은 알버트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 <서구 문화의 몰락과 복구> <문명과 윤리> <생명의 외경(畏敬)>등이다.

그 가운데서도 슈바이처 박사의 신학이론과 생활일상을 기록한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Aus meinem leben und denken)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다.

슈바이처 박사는 1878년 1월 14일 불란서 알사스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학교 음악교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워 8세에 교회 오르간니스트(Organist)가 되기도 했다. 그는 18세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후 1924년에는 칸트의 종교철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8년에는 ‘역사적 예수전’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의 신학부장으로 취임했으며, 바흐 음악에 있어서는 구라파 최고의 음악 수준에 오르기도 했다. 이와 아울러 그는 니콜라의교회의 설교 목사로 추대를 받음으로써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학문 세계는 세계종교로써의 기독교 현대 문명과 종교, 전쟁과 평화문제, 문화와 윤리문제 등 분야가 다양했다. 그 중에 슈바이처의 중심 문제는 ‘생명의 존엄’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도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흑인문제는 늘 그의 고민거리였다.

그러던 중 슈바이처는 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부자는 흑인을 착취하는 백인으로, 나사로는 병이 나도 의사도 없이 신음하다 죽는 흑인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슈바이처는 자신이라도 백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흑인들의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내 교수, 음악기술, 선교 목사직을 다 사직하고 30세에 의과 대학에 들어가 내과와 외과를 전공한 의사가 되었다. 그의 아내 역시 간호학교를 졸업을 한 후 부부가 함께 1913년 수난 금요일에 아프리카 람바레네로 떠났다.

자비량 선교사로 떠난 그는 때때로 유럽을 순회하여 강연, 음악 연주회, 저서의 인세 그리고 28개국의 친구들이 보내준 많은 후원금으로 병원 건축은 물론 그것을 운영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때때로 백인으로부터 “당신은 왜 흑인을 돕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흑인은 백인과 같은 생명을 타고 났다.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식물, 곤충, 초목이 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의 생명도 존엄한 것이다. 문화는 무엇인가? 인간이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선을 추구하고 사랑을 베풀어 지선지애에 이르는 것이 문화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까?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지선지애에 이르게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서구 문화의 몰락과 복구> <문화의 윤리> <생명의 외경>등 저서를 써서 유럽 독서계를 휩쓸었다. 이후 박사가 별세한 후에도 세계의 이목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세계 각국의 의사와 간호원들이 슈바이처 박사에게로 몰려왔다. 일본인 다까하시는 오래전부터 슈바이처 박사를 돕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이일선 박사가 슈바이처 박사를 방문하고 돌아와 의학을 공부한 후 울릉도로 들어가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기도 했다.

필자 역시 당시 슈바이처 박사의 <나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 흥분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던 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지 못할 상황이어서 생활에 큰 변동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이 책은 목회자의 기본자세로 생명 존엄의 재인식, 지성인의 실천력 증진, 불우한 자들과의 친절성 재인식, 문화인으로서의 생활 과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만은 확실하다.


윤춘병 감독(감리교역사박물관장)

윤선주 기자  sun@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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