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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의 America를 품다”76년부터 주한 미 8군 선교, 젊은이‧군인 제자훈련‧양육에 쏟은 34년

평신도선교사로 산 51년, 유강식 선교사 

   

시내 한복판, 소위 말해 서울의 ‘노른자’라고 분류되는 대한민국 땅 한가운데 'Korea'가 아닌 'U.S.A'라고 표기되는 곳이 있다. 분명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곳, 바로 미군들이 거주하고 주둔해있는 미군부대다. 일반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의 출입 또한 철통경비로 지키는 엄격한 미군부대 안에서 올해로 34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국내에 거주하며 해외 선교를 할 수 있는게 얼마나 특별한 사명이냐”며 웃는 유강식 선교사(사진)는 오랜 시간 특별한 인연을 유지해오며 78세, 은퇴하고 집에서 쉴 만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으로 주님을 땅 끝까지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신촌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만난 유강식 선교사는 이곳에서 38년 동안 살고 있다며 기자를 자신의 서재로 인도했다.

신촌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만난 유강식 선교사는 이곳에서 38년 동안 살고 있다며 기자를 자신의 서재로 인도했다.

현재 미 8군 한남빌리지교회(채플)를 맡고 있으며 미8군 수양관, 사우스포스트 채플, 메모리얼 채플 등 미군을 대상으로 제자훈련과 채플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는 유강식 선교사는 어느 교단, 어느 교회에 소속된 목사는 아니다.

성경대로, 말씀대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길만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평신도 선교사’다.


운동과 싸움으로 얼룩진 생활을 해오던 유 선교사는 고등학교 2학년 새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교회를 찾았다. 교회활동을 하며 열심히 섬기는 그였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8개월 동안 짝사랑하던 옆집 여대생에게 고백 한 후 한없이 비참함을 느끼게 된 유강식 선교사는 친구의 권유로 수련회를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영접했다.


“‘내가 왜 죄인이냐’는 생각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지긋지긋한 죄 가운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저도 모르게 회개기도가 폭발했죠.”


그렇게 수련회에서 주님을 만난 후 유 선교사는 주님을 더욱 알고 싶은 마음에 부흥회를 찾았고 그날 강사로 선 네덜란드 선교사 한 명을 만나게 됐다.

다른 곳의 집회가 예정돼 있던 그에게 이끌려 유 선교사는 네덜란드 선교사와 동행하게 됐고 자신의 말씀을 통역해달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당시 성균관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유 선교사는 얼떨결에 말씀을 통역했고 하는 내내 하나님이 자신의 입술에 거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너무 떨리고 두려웠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거라. 하기 전 입술에 능력 달라고 기도하고 올라갔어요. 저도 모르게 술술 통역을 해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더라구요.”


그것이 계기가 돼 유 선교사는 미국 네비게이토 선교사를 만나게 됐고 그 선교사를 통해 미8군 선교사와 만남을 갖고 제자훈련 양육?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그 선교사님을 따라 미8군에 들어가 선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저에게 기회를 줘서 기도, 간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죠.”


외아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에게 선교사로의 길은 부모님에겐 충격이었다. 7년 간의 핍박에도 불구, 유 선교사는 선교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 선교사는 오산, 평택, 수원, 의정부 등 미군 부대를 다니면서 선교활동에 동참하게 됐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선교에 한발짝 더 가까이 가고자 했던 유 선교사에게 싱가폴에 있는 네비게이토 국제본부에 1년 동안 가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65년 그곳으로 보내져 제자훈련을 받았다.


66년 8월 한국으로 돌아온 유 선교사는 대학생 캠퍼스를 다니며 젊은이들의 제자양육에 힘썼고 점점 그의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10년이라는 시간동안 1000명 이상의 젋은이들이 전국 각지에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로 양육, 열매 맺는 결실을 얻게 됐다.


네베게이토선교회 한국 센터를 개척하고 15년 동안 대표를 역임한 유강식 선교사는 73년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웠던 빌리그램대전도대회, 세계기독군인대회 등 세계적인 대회와 워크샵 등에 강사로 서며 하나님을 증거하고 전했다.


한국 사람으로 3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미군부대를 자유롭게 출입하며 선교한 유일한 한 명, 유강식 선교사.

그는 여전히 고령의 나이에도 젊은이들의 제자양육의 중요성과 필요를 위해 쉴 수 없다고 말한다.


“주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삶이지만 지금껏 기도로 51년 평신도선교사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이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로만 소통되는 이곳이 제가 섬길 수 있는 특별한 한국의 선교지인 것 같습니다.

채문주 기자  mjch@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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