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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사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다르다면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1920년대 미국의 전투적 복음주의자들의 사고와 행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고안되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지금은 전투적 입장을 취하는 보수주의를 가리키는 의미로 확대되어 사용된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힌두교나 유대교, 이슬람에도 근본주의자들이 있고,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에 있어서도 사용되곤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경우든 근본주의는 호평을 받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편협하고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항상 문제와 분란을 일으키는 쪽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옥스퍼드의 신경학자가 종교적 근본주의를 심리장애로 보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으며,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21세기 큰 적들의 하나로 근본주의를 꼽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종종 근본주의자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최근 한국 교계에서 벌어지는 WCC 총회 반대운동도 그런 경우라 생각한다. 불과 며칠 전에도 WCC 반대대책위라는 단체가 WCC 총회 관련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독공보와 기독교계 방송사인 C채널을 이단옹호 언론으로 규정하고 교인들의 구독 및 시청 거부를 요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다. 기독공보의 경우 WCC 정회원교단인 예장 통합측 기관지인데, 이 신문의 기사를 이단 옹호라 한다면, 이단에 가입된 예장 통합측은 어떤 정죄를 받아야 할까? 또 초교파로 운영되는 방송사의 보도까지 간섭하고 시비하려 들면, 앞으로 WCC 총회를 다루게 될 KBS나 MBC 같은 공중파 방송,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일간지도 이처럼 공격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들은 오는 15일 2차 발표에서 더 많은 언론을 이단옹호 매체로 포함시키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착각이 자유라 해도 그렇게 해서 부담을 갖거나, 보도를 포기할 매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딱하기만 하다. 언론을 상대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압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횡포이며 수준이 떨어져도 한참은 떨어지는 행태이다. 솔직히 이런 유치함은 대중의 호응을 받기도 어렵다. 

보수주의나 복음주의 인사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근본주의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주의나 복음주의 입장이 근본주의와 다르다면 편협한 사고나 치졸한 방법부터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진보와 종북이 다르다면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인 혁명 운동가들을 일컬어 ‘좌익소아병(左翼小兒病)’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산혁명의 원조 격인 레닌이 1920년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급진적이고 교조적인 이들을 비판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얼마 전 이 용어가 번역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레닌이 원서에서 사용한 용어는 ‘유아적 무질서’인데 번역할 때 좌익 소아병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가들 사이에는 두 표현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3자적 시각에서는 어느 표현을 사용하던지 레닌조차도 급진주의자들의 유치함을 지적한 것이라 판단하게 된다.  

국정원이 발표한 이석기 의원 관련 사건을 보면서 레닌이 말한 좌익소아병이란 표현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현직 국회의원이 주도한 모임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것도 모자라 무장 봉기 논의까지 있었다니 아무리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해도 이건 아니라고 본다.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란 전제아래, 이들의 논의 수준을 보면 무섭다기보다는 한심할 정도로 유치하다. 장난감 무기를 개조하자거나 사제 폭탄을 제조하자거나, 유사시 전화국 등을 공격하자는 논의가 도무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정상적 사고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무장봉기나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고 보는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80년대 운동권이 무장봉기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는 어느 매체의 지적도 공감이 가고, ‘정치 포르노물을 은밀히 즐기다 들킨 사건’이라는 어느 진보 논객의 일침도 귀에 쏙 들어온다. 알려진 내용 이외에 더 이상이 없다면, 거창하게 내란 음모라 말하기도 쑥스럽고, 이들에게는 좌익소아병이라는 그럴듯한 표현보다 유아적 무질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여겨진다.  

그런데 이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 통합진보당이나 일부 진보진영이 보이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모임과 대화내용이 유포된 상황에서 사실에 대한 확인은 하지 않고 프락치니 국정원 사찰이니, 내란죄 적용은 문제라느니 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어이없는 태도다.
통합진보당 혹은 사건 관련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정원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수사에 임해서 사실부터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법 적용이나 사실에 대한 오해가 있으면 바로잡으면 된다. 또 사실관계의 왜곡이 있거나 정치적 음모가 개입된 것이라면 국민이 이를 심판할 것이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입버릇처럼 말해온 것이 있다. ‘진보’를 ‘종북(從北)’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일견 옳은 말이긴 한데, 이번 사건의 의혹처럼 ‘종북’이 곧 ‘진보’처럼 숨어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을 구분해 내고 단절해야 할 책임이 진보진영에 있음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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