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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사설

성탄절의 이름 값

언젠가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윈터벌’로 바꾸자고 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윈터벌’은 겨울의 윈터와 축제의 페스티벌을 합성한 말인데, 이미 성탄절이 예수님의 탄생과 상관없는 일반적 겨울 축제로 자리 잡았기에 다른 종교인들도 편하게 즐기도록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상업화된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보면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성탄절에 주인공은 간 데 없고 소비와 향락으로 요란 법석을 떠는 오늘의 성탄절이 우리를 씁슬하게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이름도 다르지 않다. 보통 한자로 된 이름들은 한 자 한 자 좋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름대로 사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리스도인, 성도, 신앙인. 내가 가진 이름 못지않게 우리는 이 이름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이 이름의 값을 한다는 것은 곧 주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지키는 것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라는 고귀한 이름을 지키는 역할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저 파티나 하고 선물이나 주고받는 상업적 휴일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축하하고 기억하는 신앙의 기쁨과 결단이 이날의 이름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일이 열거하진 못하지만 전국 감리교회에서 벌어지는 성탄 행사나 불우 이웃돕기가 하나하나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지켜내는 일이며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11년째 광화문 크리스마스를 이어오며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고 돌보려는 감리회의 노력도 매우 소중한 것이다.

예수님이 오셨던 그 옛날 베들레헴의 성탄이 화려한 축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지켜내야 할 성탄의 이름 값은 구원의 시작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절기이자 성도들이 소외된 이웃과 상처받은 영혼을 향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치유의 빛을 비추는 회복과 평화의 날이 되어야 한다.

철도 민영화 논란을 보면서

철도파업으로 온 나라가 불편을 겪고 있다. 코레일은 파업에 참가한 7000여명을 무더기 징계했고, 정부 당국도 불법 파업 주동자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등 강경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이번 파업의 핵심은 철도 민영화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와 불신 때문으로 보인다. 당장은 수서 발 KTX 자회사 설립이 문제다. 노조는 이것을 철도 민영화의 수순으로 보았고, 파업이라는 강수를 택한 것이다.

철도 민영화의 핵심은 다른 공공부문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경영을 시도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코레일은 오랜 독점 구조로 17조원에 달하는 만성적 누적 부채에 허덕이는 ‘방만한 공기업’의 대표 사례여서 경쟁 체제를 도입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와 노조가 맞서는 ‘민영화’라는 표현의 사용여부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돈 버는 철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민영화 주장의 요지는 이처럼 간단하고 분명하다. 지금처럼 적자 운영을 계속하면 시민들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는데, 민영화를 하면 혈세 낭비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혀 나쁠 것이 없는 논리로 들린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민영화 이점이 논리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공부문의 질과 서비스가 향상된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영화란 것이 결국 경영 합리성과 이윤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때문에 당장은 방만한 경영 정비를 통해 효율성 제고를 우선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요금인상을 통한 경영수지 개선에 초점을 두게 된다. 당장은 이익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상당한 비용 부담과 불편이 시민들에게 돌아온다는 말이다. 적자노선 폐지와 요금인상이 예상된 수순이며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운임도 비싸고 서비스도 낮은 철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철도 노조의 주장이다. 상당수의 시민단체가 같은 이유로 철도노조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불법 파업까지 지지할 생각은 없지만 철도에 이어 의료 민영화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공공부문이란 표현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공공이란 말 그대로 사회일반이나 공중의 이익과 관련된 부문을 말한다. 당장의 이익을 쫓다가 더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게 어디 세상만의 문제겠는가? 요즘 감리회 본부에 대한 구조 개편 논란이 일고 있는데, 세상의 민영화 논란과 유사한 부분을 볼 수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본부의 공공성과 정책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투입되는 인력이나 사용되는 비용도 그저 계산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분석과 대처가 있다면 다행인데 지금처럼 주먹구구식 논리와 개편에 치중한다면 본부의 기능과 역할이 망가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감리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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