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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사설

동대문교회와 서울시장

동대문교회 철거에 항의하는 거리의 새벽 기도회가 두 달째 계속되고 있다. 127년 역사의 동대문교회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평신도들은 동대문교회 역사보존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이전을 반대하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동대문교회 남은 사람들의 장막교회’라는 이름의 주일 예배가 동대문교회 앞에서 드려지고 있다. 이들은 또 광화문 감리회관과 서울시청을 오가며 항의집회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우선은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 없다. 127년 역사의 동대문교회가 매각 처분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이를 되돌릴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의 반대운동은 계속되지만, 정작 감리회 차원의 대처 노력은 미흡한 것도 답답함을 더한다. 당사자 격인 동대문교회는 하루 속히 교회가 이전되길 바라고 있고, 서울시는 이제 와서 왜 딴소리 하느냐며 철거입장에 요지부동이다.

동대문교회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는데, 과연 현재의 시점에서 교회를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예상이 좀 더 앞서는 상황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누차 지적하는 것처럼 동대문교회 몇몇의 잘못만은 아니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의 책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철거를 기다릴 수는 없고, 이제라도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 하는데 우선은 서울시를 설득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조선시대 성곽을 복원하는 일이 의미 있는 사업이긴 하지만, 동대문교회가 성곽 복원의 필요조건이 아닌 만큼, 공원을 만들기 위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종교시설을 철거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해야 한다. 동대문교회는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이며,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장소였다. 이처럼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교회를 공원 때문에 철거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또 하나 동대문교회에 대한 수용협상과 계약이 원 소유주인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도 있다.

관건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태도다. 결정된 재개발 사업도 주민이 반대하면 취소하겠다는 시장의 평소 소신이라면 동대문교회의 문제도 원점에서 재검토 못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감리교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는 6월이면 서울시장 선거가 있다. 동대문교회 문제만으로 현 시장을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다소 오버일수 있지만, 감리교회의 실수를 이용하고 재검토 요구조차 외면하는 태도라면 감리교회의 지지를 받기는 곤란할 것이다.

북한인권법의 필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연이어 방문해 새해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황 대표가 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와 만난 자리에서 국회가 논의 중인 북한인권법에 대해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부분이 많아 자세한 내용은 알길 없지만, 새누리당에서 공개한 내용에 의하면 김 총무는 북한인권법이 북한의 내부 정치에 관여함으로 대화의 통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견해이긴 하지만, 현재 북한의 인권 상황을 바라보면 쉽게 동의하기는 힘든 주장이라 여겨진다. 북한의 인권이 내부 정치 문제임은 틀림없으나 그래서 외부에서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정권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은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국제사회의 압력이 필요하다. 내부 정치문제라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하려면 오래전 동티모르 사태나 미얀마 독재의 문제, 시리아 내전이나 아프리카 각지에서 벌어지는 종족 간 분쟁에도 국제 사회는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특히 7-80년대 한국 사회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면서, 국제사회의 상당한 협력과 지원을 받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말해서는 곤란하다. 극단적 비유하긴 하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책임에 대한 논란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암묵적 동의 여부에 있다고 보면 훗날 북한이 자유화됐을 때 오늘의 상황을 놓고 누군가 교회의 책임을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이런 법이 만들어진다 해서 북한이 당장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법을 꼭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참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입장, 아니 같은 동포로서 대한민국의 확고한 의지를 북한 정권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십보를 양보해서 그렇게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치자. 그렇다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교회는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고, 또 앞으로는 어떤 방법으로 해 나갈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인권법이 다른 국가의 인권상황을 또 다른 국가의 법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라서 잘못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회 대표, “인권은 타협이나 선택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 절박한 상황에 대해 정부 간, 국가 간, 민족과 국민 간에도 분명히 지적해야 하고 말을 해야 할 인류의 의무가 있다. 특히 우리 동포로서 그것에 대해 침묵하면 과오가 된다”고 말하는 정당의 대표, 어딘지 입장이 뒤바뀐 느낌이어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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