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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피조물 인간중심주의의 파산



생명 복제 생명 윤리 - 박충구 지음

“현대 생명공학이 생명중심적 가치관에 따라 그 책임성과 신중성이 깊이 고려되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생명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과 사명을 나누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한때 목회자들 사이에서 미래학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가 이미 불러 일으키고 있는 획기적인 변화에 따라 어떻게 목회적인 대응을 할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디지털 혁명, 멀티미디어, 인터넷 등등 - 이러한 류의 목회적 관심사는 그리 심각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음란정보의 온상인 인터넷 세계는 확실히 비난 받아 마땅한 대상이지만 컴퓨터나 인터넷 기술 그 자체가 윤리적인 문제를 유발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컴퓨터는 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저 유익하게 책임적으로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실제 사용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생명공학 분야는 특히 더 그렇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유전자 조작이나 생명 복제 기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 박충구 박사는 책 머리말에서 기독교 윤리학은 간학문적 방법론을 빌려오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신학적 전통과 교회의 신앙만을 갖고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불러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명할 길도 없고 이해할 길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 생명공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애초에 2005년으로 예정되었던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이 5년이라는 시간을 단축한 것을 보더라도 생명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 폭과 속도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새로운 문명 속의 죄의 보편적 성향을 경고한다. 즉 오늘의 생명공학적 현실은 인간중심주의라는 죄스런 삶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과학적 이슈에 대해 목회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피상성과 싸워야 한다. 저자는 분자생물학에서 생명복제에 이르기까지 책이 다루고 있는 연구 영역에 대한 교과서적인 충실성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간다. 19세기 멘델의 형질유전 이론에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 드 브리스의 돌연변이설, 1953년 왓슨과 크릭의 이중의 나선형 DNA구조 규명, 1970년대 DNA의 분리와 합성 기술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요약되고 있다.
생명공학의 연구 방법은 생명 현상을 DNA 염기서열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조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생명과 다른 생물들과의 차이는 염기서열의 배열과 숫자상의 차이, 즉 DNA의 염기비가 다른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 현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지만 과학자들이 그것을 무분별하게 확장하게 된다면 섬뜩한 형이상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지도의 샘플로서 동물 가운데 제일 적은 수의 염기서열을 가진 선충의 유전자 지도를 1992년 그려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하여 1990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15년간의 연구분석 기간을 설정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해내려는 게놈프로젝트를 출범시키는 한편, 1992년 최초로 인간 염색체의 물리적 지도가 발표되기에 이르었다.
배자복제(embryo cloning)란 수정된 배자의 초기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세포를 분리시켜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의 배자 뿐만 아니라 인간의 배자도 복제의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수정된 이후 14일 이내의 미발육 상태의 수정란은 아직 인간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하며, 신체 중 어떤 기관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만능 세포의 성격을 지니는 이유로 중요한 실험의 자원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과연 어디부터 인간이고 어디부터 단순한 세포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 ?
배자복제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인류의 오랜 관념과 경외감에 정면으로 충돌하며 체세포복제(Adult Cell DNA Cloning)는 생명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스코트랜드 에딘버러대학의 로슬린 연구소의 발생학자인 아이언 윌머트와 연구팀은 1997년 4월 최로로 체세포 핵을 제거한 난자에 접합시켜 발생시킨 복제양 돌리(Dolly)의 탄생을 알렸다. 돌리의 탄생은 발생학적인 측면에서 먼저 배아의 세포주로부터 이루어낸 복제가 아니라 성체세포에서 복제하였다는 점에서 생명발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불러왔다. 결정된 성체세포에서도 유전정보를 새롭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나아가 척추를 가진 고등동물의 무성생식적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어지는 장에서 저자는 생명복제 찬반론을 영역과 이슈에 따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생명복제를 지지하는 주요 논거는 주로 실용성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알려진 유전적 비정상 상태는 약 5,700가지인데 그 중 유전학적 테스트를 통해 찾아낼 수 있는 질병은 약 300가지 정도라는 점,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확보하는 것이 실험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우수한 품종의 다량 복제는 인류의 식량 위기와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이식하여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형질 전환된 장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불임치료에 적용하여 가족의 행복을 증진시켜 줄 것이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반대의 논거는 실용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생명복제와 유전자 조작은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영혼으로서의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고, 실험으로 무수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생명에 대한 모독이며, 생명복제는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 창조, 인간의 개체성 파괴, 법률적 혼란 등도 강력한 반대 논거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의 4장과 5장에는 생명복제에 대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법제화 현황과 주요 종파와 교단의 종교적 입장이 소개되어 있다. 주요 국가들의 법제화 현황을 통해서 우리는 다국적 프로젝트를 통제할 국제적인 규약이 미비하다는 것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법적 규제의 사각 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다양한 종파와 교단마다 입장도 다양하지만 생명에 대한 경외와 무분별한 연구와 실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는 공통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현실에 대한 체계적 기술을 바탕으로 세 장에 걸쳐 생명윤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 그 골간을 차지한다. 창조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인간중심적 도그마로 인하여 인류가 경험하였던 홀로코스트와 지구적 환경위기를 생각한다면 생명복제가 불러온 윤리적 이슈의 문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관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애초에 과학자들의 의학적이며 생물학적인 관심으로 시작되었던 인간 유전자에 대한 탐구는 더 이상 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다. 생명공학은 말 그대로 상업적이며 국가적인 전략적 과제로도 이해되고 있는 현실에 도달하였다.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되어 특허를 얻는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근자에 들어서면서 각 국가들은 전략적 산업의 중요한 분야로 생명공학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생명공학의 세계관적 전제가 인간중심주의적 오류에 기인한다면 그 기술적, 경제적 토양 자체는 이미 죄의 구조를 배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현대 생명공학이 생명중심적 가치관에 따라 그 책임성과 신중성이 깊이 고려되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생명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과 사명을 나누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과 윤리학자로서의 엄정함을 접하게 해주는 보기드문 역작이다. 목회자들은 물론이요 특별히 우리의 중고등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우선적으로 권장하고 싶다.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은 물론 깊이 있는 사고의 훈련도 쌓을 수 있는 좋은 교양서이다.

백구영 목사(아현중앙교회)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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