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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사설

변화와 개혁, 첫걸음부터 중요하다

감리교회가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은 것으로 안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어려움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면서, 구조적 변화 없이는 감리교회라는 배가 침몰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한다. 지난 6년의 혼란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도 한다. 

따라서 감리교회에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고, 새로운 구조,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감독회장에 대한 법적 논란이 일단락된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때라는 주문도 일리 있다 생각한다. 장정개정을 통한 구조의 변화는 그런 면에서 당연한 수순의 요구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이나 제도를 고쳐 틀을 바꾸는 외형적 과정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을까 하는 내용의 문제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모양지어 간다.”는 처칠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가 바꾸게 될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이 결국 미래의 감리교회를 만들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장정개정을 시급히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법과 제도를 검토하고 개혁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돼야 한다. 

장개위 등 일부에서 서둘러 입법의회를 열어 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이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나 문제제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 입법의회에 속한 분과위원회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실정이다. 제30회 총회 입법의회 운영위원회는 최근 상임위를 열고 지난해 입법의회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장정개정안은 각 분과에서 연구해 마련해야 하고, 장개위는 이를 수합해 심의한 후 입법의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한다. 장개위가 입법안 마련의 전권을 행사해온 그동안의 관례로 보면 파격적인 결의인데, 사실은 이런 지적이 합리적이고 당연한 요구다.

과거의 틀을 고쳐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려면 그 첫걸음인 장정 개정 작업부터 과거의 잘못된 관례를 깨고 절차와 내용을 충실히 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2년마다 법을 고치는 소모적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찬송가 이대로 좋은가

찬송가를 둘러싼 볼썽 사나운 모습이 여전한 모양이다. 한국교회연합이 찬송가 대책위원회를 조직한데 이어 토론회까지 열고 현재 통용되는 21세기 찬송가를 비판하고 나섰다. 찬송가 보급을 주도하는 찬송가공회 측은 이에 반발해 토론회가 공정하지 않다며 참석 자체를 거부했다. 

찬송가공회측이 불참한 토론회는 예상대로 21세기 찬송가에 대한 집중적인 성토와 새로운 찬송가 제작의 필요성까지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 많다. 찬송가공회가 독점하는 현재의 찬송가 편집·관리 운영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고, 2006년 출시한 21세기 찬송가의 수록곡 중 한국인 작사·작곡자의 경우 정치적 배려나 사적인 친분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심각하게 들어봐야 하는 부분이다. 토론회에서 지적된 것처럼 한국인의 곡에 대해 매년 8억 원 이상 저작권료가 지급되고 있다면 그저 배려나 친분의 문제로 넘어가긴 곤란 해 진다. 게다가 창작 가사들의 경우 비성서적, 비신앙적 내용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면 사실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나 비판이나 찬송가공회에 대한 반발이나 정치적 공격을 위해 과장되거나 확대되고 있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찬송가 제작을 독점하면서 찬송가공회를 사실상 사유화해버린 몇몇 인사들의 잘못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예배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의 내용을 공격하거나 아예 새로 만들자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곡이 많다는 것도 비리가 아니라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고 권장해야 할 일이지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 찬송가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간단한 것이다. 찬송가공회가 재단을 만들면서 한국교회가 공유해야 할 권리를 사유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찬송가공회의 잘못은 분명하고 공회로서의 위상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고 지켜야 할 선도 있는 법이다. 한국 교회가 우선 할 것은 찬송가에 대한  권리를 정당하게 되찾는 것이다. 법적 대응도 강화해야 하고, 공 교단을 중심으로 합리적 여론도 형성해 가야 한다. 찬송가공회가 아무리 사유화돼 버렸다고는 하나 그 기구를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공교회에 소속된 인사들일 것이다. 각 교단이 좀 더 강력한 입장과 법적 조치를 취해 간다면 문제 해결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수도 있다.   

반면에 막대한 비용과 혼란이 예상되는 새로운 찬송가의 제작은 가급적 검토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칫하다가는 찬송가 제작에 대한 수익금 싸움처럼 이 문제가 왜곡되고 혼탁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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