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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사설

민족의 화해가 호국의 지름길 돼야

6월은 현충일을 시작으로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날이 들어있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해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갖는 것이다. 교계 보수적인 단체에서 이런 6월을 기념하면서 호국 기도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진보적인 단체들도 다소 내용은 다르지만 6월을 의미 있는 달로 기념한다. 6월 25일도 중요하지만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일이 있어 더욱 의미 있게 지키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의미 있고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다.

하지만 양측의 시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기총과 같은 보수적 단체들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그러한 희생 위에 세워져 있음을 강조한다. 또 전쟁을 고집하는 북한을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더욱 굳건한 안보 의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교회협과 같은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분단과 대립이 모두의 잘못이라는 전제아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노력과 우리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 등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같은 역사, 같은 6월을 기념하면서도 이처럼 시각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안에서조차 입장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말하는지 답답할 때도 많다.

6·25를 맞아 특별기획으로 만나 본 탈북신학생들은 한국교회가 진심으로 통일을 원하느냐고 물어 온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와 통일은 어떤 모습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바라기는 보수와 진보가 조금씩 양보해 우리 사회 안에서부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합의를 이뤄갔으면 한다. 둘로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종식하고 평화와 번영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갈 신앙적 사명과 책임이 우리 교회에 주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침 남북한의 교회 대표가 스위스에서 만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몇 번이나 우리들의 부주위로 꺼트렸던 평화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비록 구체적 실천 사항이 빠져 있어 아쉬움은 있지만, 모처럼 만들어진 화해와 협력의 계기가 더욱 확대되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남북관계까지 시원하게 뚫어줄 물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민족의 화해가 통일로 이어져 진정한 호국의 지름길이 되도록 교회가 더욱 힘을 모아 기도해야 한다.

장개위에 대한 아쉬움

장정개정위원회가 임시 입법의회를 열지 않기로 한 총회 실행부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개위는 기자회견에서 총실위 결의가 불법이라 주장했고, 산회된 입법의회에서 통과된 내용만이라도 공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재판 청구는 물론 사회법 까지 가겠다고 엄포도 놓았고, 개혁특위 구성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년 넘게 장정 개정을 위해 노력해 온 장개위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장개위 스스로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엉뚱하게 총실위나 감독회장을 문제 삼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개정안의 숱한 오류들, 무리한 절차와 과정상의 문제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지 총실위의 책임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총실위가 이미 입법위회 소집을 결정했다거나 개혁특위가 초법적 기구로 입법의회를 사실상 해산시키는 것이라 주장한 것도 사실관계부터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공개된 총실위 회의록은 임시 입법의회 소집을 결정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고, 개혁특위도 현재 알려진 바대로라면 장개위나 입법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장개위가 입법에 대한 모든 논의와 권한까지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장개위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장정개정안을 성문화 하는 권한을 가졌다. 단어 뜻 그대로 개정안을 문서로 만드는 권한에 그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감리회의 관행은 마치 장개위가 장정 개정의 전권을 가진 것처럼 활동해 왔고, 입법의원들은 그저 상정한 안에 ‘예’와 ‘아니오’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거수기로 전락해 버렸다.

장정 개정을 통해 교단을 개혁하는 일은 감리회 구성원들의 합의 속에 이뤄져야 하며, 장개위가 할 일은 그러한 여론을 수렴해서 개정안을 만드는 역할일 뿐이다.

총실위가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서 내린 결정을 장개위가 부정하고 반발하는 것은 모양새부터 좋지 않다. 감리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내부 혼란이 반복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각 위원회가 고유 기능과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하려 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면 그뿐이고 전체를 조율하는 것은 감독회장과 총실위의 몫으로 인정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혼란과 갈등이 여전한 감리회의 현실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내세우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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