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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개혁

감리교회의 올해 화두 가운데 하나가 개혁(改革)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올 가을 입법의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인데, 이미 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 중이고, 조금 있으면 장정개정위원회도 조직돼 개혁 입법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이 뿐 아니다. 감독회장을 상대로 소모적인 소송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도 합의의 첫째 조건으로 개혁을 내세우고,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이른바 독립연회를 말하는 이들도 감리교회의 개혁이 요구의 핵심처럼 주장한다. 

이처럼 너도나도 개혁을 말하는데, 재미난 것은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상대방을 마치 개혁을 원치 않는 집단처럼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장이 관철돼야만 개혁이 되는 것처럼 논리를 펴 나간다.

더 재미난 것은, 그런 주장의 근간이 되는 개혁의 내용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현재의 모습이다. 개혁을 위해 이런 저런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소리는 들려도 그 개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말이다. 소송을 진행하는 이들도 그렇고, 이른바 독립연회를 말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감리교회 안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10월 입법의회가 예정돼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진행될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어떤 방향의 개혁으로 택할 것인지, 어떤 형태의 제도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 제안이나 설명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개혁이라 하고, 어떤 내용을 주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말처럼 어쩌면 서로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개혁을 바랄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혁의 구체적 주장들을 내놓고 조율하며 합의하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을 건너뛰고, 정치적 힘을 통해 개혁을 주도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오히려 개혁이 대상일 수 있다.

누구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개혁을 그저 정치적 명분처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개혁에 대한 구체적 대안부터 내놓고 공동체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가야 한다.

지금은 감리회 총회나 감독회장도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가동 중인 개혁특위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따라서 진정으로 감리교회의 개혁을 원한다면 정치적 행동을 우선할 것이 아니라 개혁특위나 곧 구성될 장개위를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개혁의 논의를 풀어가는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이단 사이비의 준동을 경계하며

세월호 사고와 구원파 소동으로 잠시 주춤하던 이단 사이비 종교들이 또다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신년하례회를 가지려던 예장 합신측 총회는 이단시비와 관련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합신측 총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모 교회 교인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리며 행사장을 뒤엎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날 난동을 부린 교회는 얼마 전 주일에도 서울남연회 소속 대림교회에 몰려와 이 교회 교인인 이단대처 활동가를 납치하려 한 일도 있었다.

자신들이 이단으로 규정된 일에 대해서는 억울할 수도 있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하지만 공교회 행사장에 몰려가 난동을 부린다거나 주일 다른 교회에 난입해 교인을 납치하려고 물리력을 행사한 일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행태만 놓고 보면 혹시 이단은 아닐지 몰라도 사이비 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이들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도 폭언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폭행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기자라는 이유로 어떤 특권을 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취재를 방해하는 폭언이나 폭행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큼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이나 검찰은 이런 사안을 종교단체 내부의 문제로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구원파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의 잘못된 행태는 초기에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치하다가 후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리나 신념까지 법으로 제재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소동처럼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해서 법적 책임을 물어 달라는 말이다. 

차제에 교단적으로도 이단 사이비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단 사이비 문제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 교단의 할 일을 다했다고 보지 않는다. 교단의 정리된 입장에 따라 개체 교회 현장에서 이단 사이비 문제에 적극 대처하도록 하려면, 이번 소동처럼 충분히 예상되는 이단 사이비 집단의 물리적 공격이나 법적 시비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교단적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례로 서울의 한 감리교회가 구원파에 의해 소송을 당했는데, 연회 혹은 총회 차원에서의 관심이나 지원 시스템이 없어 소송을 당한 목사 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단에 대한 연구도 좋고 교육도 좋은데, 그로인해 벌어지는 이단과의 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법적, 재정적 지원 시스템도 총회 차원에서 마련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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