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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못할 총회 심사위

감리회 사태기간 기독교타임즈에서 벌어진 불법과 비리는 경악할만한 수준이다. 3년 동안 감사나 이사회의 관리감독을 전혀 받지 않았고, 인사나 재정 집행에 제대로 된 사장의 결재도 없었다. 국장과 부장 등 임원들이 주도한 이 같은 불법 비리 경영의 결과는 2012년 8억원, 2013년 3억원의 지원금을 쏟아 붓고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심각했다. 결국 교인들의 귀중한 헌금 십 수억 원이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불법과 부실의 책임이 있는 국장과 부장들이 교단을 상대로 가압류 소송까지 벌여 자신들의 급여를 챙겨갔다는 사실이다.

지난 15일 열린 총회 심사위원회의 결정은 그런 무질서와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스스로 포기한 무책임한 모습을 드러냈다. 총회 심사위는 총회 실행부가 고발한 3인 가운데 박영천 전 국장만을 기소하고 나머지 두 명은 기소유예 했다. 심사위는 기소한 박 전 국장의 경우도 오래전 범과가 많아 대부분이 교단 재판법이 정한 공소시효를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명의 기소유예 이유는 상사의 지시에 의한 것이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심사위는 기소유예를 말하면서 난데없이 형법 51조를 들고 나왔다. 일반 형법에서 양형을 정할 때 참작해야 할 사유들인데, 쉽게 말해서 처벌을 가볍게 하기위해 끌어 들인 것으로 보인다.

교회 재판의 목적은 “교리와 장정을 수호하고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재판에 형법 조항을 들고 나온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런 형법논리를 적용하려면 ‘포괄일죄’라는 형법 개념대로 피고발인들의 범죄 종료시점을 감리교회의 재산을 빼내간 2012년 7월로 봐야 하고 이때부터 5년의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했다. 또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한 경우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점을 심사위가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기소 유예된 두 명에 대해서는 고발된 내용조차 충분히 심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이득을 취한 사안도 있고, 박 전 국장 퇴진 이후 개별적으로 진행한 행동들이 고발내용에 포함돼 있는데, 한마디로 잘라서 ‘상사의 지시에 의한 것’이기에 책임이 없다는 황당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심사위는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총회 감사의 거듭된 지적과 이사회의 수차례 걸친 징계결의, 총회 석상에까지 보고된 부실 경영 책임과 징계 대상자가 그 같은 결정을 모두 무시하고 사회법 소송을 통해 복귀를 꾀하는데 총회 심사위가 오히려 그것을 도와준 꼴이다. 반면 그동안 비리척결을 주장해온 이들이나 급여 삭감을 감수하면서 신문사를 정상화시키려 애써온 일반 직원들의 희생은 단번에 비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이번 결정으로 환수돼야 할 교단 재산을 돌려받기 힘들게 됐고, 오히려 책임자들이 수 억원을 더 챙겨가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삭족적리’(削足適履)를 말하면서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이루려면 진실을 가리거나 신발에 발을 맞추려는 비원칙의 잘못이 더 이상 생겨서는 곤란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총회 심사위는 지록위마와 삭족적리처럼, 역사의 시계를 다시 혼란스러운 과거로 되돌린 것 같아 유감스러울 뿐이다.

 

이슬람 확산을 경계하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사건 이후 유럽에서 반 이슬람 정서가 확산되자 이번에는 이슬람 국가에서 반 샤를리 시위가 격화되고 외국인과 교회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만평 하나로 시작한 소동이 이슬람과 비 이슬람 사이의 전면 대결양상처럼 확대되는 작금의 상황은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종교나 극단주의는 문제다. 이번 사태의 경우도 그렇다. 이슬람을 비하한 만평도 잘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무차별적 살상과 무장 공격으로 대응한 이슬람 극단주의는 분명 한계를 넘어선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일부 단체가 지적한 것처럼 종교를 가장한 광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슬람교 자체가 아직은 생소한 종교여서 그런 대립과 충돌에 휘말릴 위험은 적다고 본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무슬림이 어느새 14만명이고 한국인도 3만5천여명이 된다 하니 마냥 무풍지대로 안심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최근 터키에서 사라진 10대 김모군이 극단적 이슬람 테러단체 IS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그런 우려를 더욱 키우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인기는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의 대항마처럼 여겨지는 이슬람에 청소년들이 호감을 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방치하다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이슬람에 대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슬람을 극단주의와 동일시할 필요도 없고 과도하게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를 조장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슬람의 실체를 바로 알리고 주의하도록 하는 일은 해야 한다고 본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입장이라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돌보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단지 그 방법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처럼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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