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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사설

서울연회가 선택한 밝은 미래

서울연회가 21세기 선교 목표를 분명히 하는 ‘밝은미래위원회’를 출범시켜 화제다. ‘밝은 미래’라는 명칭부터가 신선하며, 10개로 세분화해 조직한 사역팀은 서울연회가 앞으로 펼쳐나갈 선교 사역의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연회는 ‘밝은미래위’ 출범을 통해 현재 25만 수준인 교세를 30만 명 선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30만 복음화팀’을 구성했다. 이 일을 위해 예전에는 비전교회에만 집중했던 지원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해 40-80명 선인 중형교회를 우선 육성하는 이른바 ‘부흥교회’ 지원전략을 선택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 교회학교 부흥을 위해 13개 지방별 모델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것 등은 현실적인 정책대안으로 기대를 모을 수 있다. 

세계선교의 조직적 지원을 위해 선교사자녀 장학금과 의료시스템 구축, 국내 거주시 숙소 마련 등을 추진하는 ‘땅끝선교지원팀’을 설치한 일이나 환경보존과 자살방지 등 지역사회 혹은 사회 운동을 담당할 ‘돌봄섬김팀’과 농촌 교회와 자매결연을 통해 농산물 직거래와 전도지원 시스템 구축에 나설 ‘농어촌섬김팀’을 설치하기로 한 것 등은 한국교회의 바람직할 역할과 기능을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로 131주년을 맞는 감리회 선교와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한국교회의 역할과 기여도를 널리 알리겠다는 ‘역사바로알기팀’의 조직도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일로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서울연회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교세 하락이 가속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20% 성장 목표를 가능하게 하려면 좀 더 치밀하고 중장기적인 선교 정책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향후 미래위에서 보강해 나가야 할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감독이 바뀔 때면 으레 등장하는 일과성, 전시성 사업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감독 재임기간에만 반짝했던 유사한 사업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연회 전체의 공감대 형성과 자발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다. 또 특정한 감독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도록 토양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일단은 ‘친교화목팀’이나 ‘소통연결팀’이 그런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제대로 가동되길 기대해 본다.

 

무모한 폭력을 규탄하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끔찍한 소동이 벌어졌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조찬 모임 도중 소위 진보진영의 한 인사에게 칼부림을 당한 것이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무리 신념을 가진 일이라 포장해도 이런 식의 표현 방법은 누구에게도 지지받을 수 없는 일이다. 좌익 소아병적(小兒病的) 오류나 소영웅주의(小英雄主義) 같은 표현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이번 일은 반사회적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 또 범인이 수사 받는 과정에서 했다는 친북 발언들이 사실이라면 좌파니 종북이니 하기 이전에 현실 적응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갖게 한다.

이런 인사가 오랜 기간 문화운동 단체를 이끌어 왔고 사회운동의 한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진영논리에 갇혀 종북 좌파까지도 무조건 비호해 온 진보 진영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이유라고 본다.

어떤 이유로든 폭력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를 살고 있다. 충분히 이성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사와 정치적 입장을 표시할 수 있다는 말이며, 실제로 범인의 삶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끼친 이번 사건에 대해 법이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주길 바란다.    

한편으로 예상 못한 습격으로 큰 상처를 입은 미국대사를 향해 우리 국민 다수가 보내준 사과와 위로의 메시지는 한미 우호관계의 지속을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믿는다. 한국교회가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폭력을 규탄하고 미국 대사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 것도 매우 적절한 행동이라 여긴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딱 좋다. 폭력행위는 규탄돼야 하고, 피해를 입은 미국대사에겐 미안한 마음을 전달해야 하고, 이런 사소한 일로 한미관계가 금이 가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노력하는 것까지가 지금 필요한 일이다.   

현실적응력이 떨어지는 일개인의 돌발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종북 몰이에 나서거나, 뚜렷한 증거도 없이 배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어선 곤란하다. 피해를 당한 미국과 대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빠른 회복을 기도하며 위로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몰려나와 성조기 흔들며 좌파를 겨냥한 시위를 벌이거나, 미국을 향해 과도한 사과의 몸짓을 이어가는 것은 오히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만고의 진리다.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충격이 크다 해서 침소봉대(針小棒大)하거나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식으로 정치적 이해득실로 사건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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