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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사설

은급제도 개선안을 보며

교역자 은급제도 개정안이 공개됐다. 교역자은급재단이 최근 이사회를 거쳐 마련한 개정안은 연금제를 기본 틀로 한 신은급법을 개정 보완하면서, 예전 은급법의 공공부조 성격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우선은 은급제도 본래의 취지대로 공공부조의 성격이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은급재단의 개정 방향을 환영한다. 이전 신은급법은 말만 감리회 법이지 사실상 기업의 연금 상품을 선택해 연결하는 방식에 불과했다. 기금 고갈의 위기가 아무리 심각했다 해도 이런 방식으로 은급제도를 바꾼 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정안도 일부 내용에는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은급재단은 기금고갈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더 내고 덜 받는’ 방법으로 타개하려 시도하고 있다. 방향은 제대로 잡은 듯한데,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자립교회의 경우 상당한 부담이 생기게 된다. 

개정안은 신은급법 도입 당시 기준 점이었던 58년 6월을 그대로 기준점으로 두고 이전과 이후 교역자들의 부담에 차등을 두고 있다. 간단히 보면, 58년 이전 출생자들은 3년 주기로 내던 은급부담금을 1년 마다 최저 120만원씩을 부담해야 하고, 이후 출생자들은 신은급법 제도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던 은급부담금을 2년마다 최소 120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다 교회별로 부과되는 부담금이 최소 1년에 60만원 이상이다. 개정안은 ‘교회은급부담금’에 대해 기존의 경상비 1.5%에서 2%로 인상하도록 하고 있는데, 최저 금액을 60만원으로 못박아 두었다. 경상비가 3000만원을 넘어서야 2%라는 기준이 적용되지 1천만원의 경우라면 6%대, 2천만원이라면 3%대의 부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정도 규모의 교회라면 교역자 은급부담금이나 교회가 내는 은급 부담금 모두를 결국 담임자가 해결해야 하는데 연간 120만원이라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기왕에 은급제도를 개선한다면, 그리고 공공부조의 성격을 회복하려 한다면, 미자립교회 또는 차상위 계층의 중소 교회가 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금 확보 방안 등이 좀더 연구될 필요가 있고, ‘덜 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당사자들의 입장에서야 불만이 크겠지만, 군목이나 교목 출신의 은급 혜택을 줄이겠다는 방법은 진지하게 검토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영적 권위의 회복을 위해

우리 사회가 온통 메르스 때문에 야단이지만, 교회 한 켠에서는 동성애 반대로 더욱 소란한 모습이다. 발단은 동성애자들의 거리 축제가 공개적으로 열리게 된 상황 때문인데, 서글픈 일은 축제를 여는 동성애 단체보다 이를 반대하는 교회에 대해 부정적 목소리가 높다는 현실이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 일부 기독교단체의 극렬한 반대 운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있다.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인 이들은 동성애자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을 죄인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교회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주장이다.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것과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의 흐름에 끌려 다녀서도 곤란하다. 교리적 판단까지는 아니어도 신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윤리적 한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동성애 소동에서 나타나듯이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영적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당하는 현실이다.    

얼마 전 이웃 교단에서 이혼한 사람은 장로가 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려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던 일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2014년 한 해만도 11만 5천건의 이혼이 발생한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죄악시하거나 이혼한 사람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상식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이혼 여부로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시비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죽하면 저런 조항이 나왔을까 하는 고충도 이해할 이유가 된다. 요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그중에는 목사도 있고 장로도 많다. 교회 안의 전통이나 신앙적 평가 보다는 세상적인 자격 기준과 판단으로 목사나 장로 안수를 주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나온다 생각하면 시대착오적이라 비난받는 이웃교단의 결정이 그렇게 황당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교인의 자격이나 구원의 효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를 세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는 일은 세상에서 말하는 감투를 쓰고 출세를 하는 일과는 다르다. 더욱 많이 섬기고 더욱 많이 봉사하겠다는 각오 아래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과 신앙점검의 계기가 돼야 하는데 총리나 장관 청문회의 기준보다 못한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입으로만 성별이나 거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고백과 희생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교회는 영적인 권위를 회복할 수 있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 파워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기독교타임즈  webam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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