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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사설

유명 작가의 표절 시비를 보며

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 논란으로 문단이 시끄럽다. 처음엔 표절이 아니라 버티던 소설가는 결국 표절을 시인했지만 이번에는 사과의 진정성 논란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표절 시비가 일어난 것은 일본의 소설 중 몇 개의 문단을 그대로 베껴 왔다는 대목인데, 스토리나 플롯을 베껴오는 표절에 비하면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다. 신경숙씨 같은 거장이 이런 단순한 표절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이 굳이 표절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표절 자체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표절 시비는 광범위하다. 방송 드라마나 가요의 표절 시비는 늘 있어왔고, 얼마 전에는 유명 요리사의 레시피까지 표절 시비의 대상이 됐다. 학계에서는 좀 더 엄격하게 표절 행위를 단속하고 있는데, 신학계의 경우는 그 정도가 약해서 그런지 심심치 않게 표절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최근 들어 목사들의 설교 표절에 대한 시비와 논란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어느 교회에서는 설교를 베꼈다는 이유로 담임목사가 물러나는 사태까지 빚어졌고, “설교 표절은 하나님과 성도를 속이는 죄”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나온다. 이제는 설교 표절의 심각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설교 표절은 교회를 병들게 하고, 설교자의 영혼을 고사시키는 행위”라는 지적을 새겨 들어야 할 때다.   

설교를 표절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통 한 주일에 열 번 이상의 설교를 하다 보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또 감리교회는 드물지만, 군소 교단에는 전문적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목회자가 많아 설교 준비를 힘겨워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교 준비의 부실이나 목회자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은혜 받은 좋은 설교를 인용하는 것이라면 괜찮지 않은가 하는 변명도 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설교는 표절 행위가 엄격히 금지돼야 하는 학문과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고, 성경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100% 창작이란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인용의 정도이며, 그렇게 인용된 설교를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다음의 행동이다. 남의 설교를 베껴 사용하고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거나, 설교집으로 출판까지 하는 경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작권 운운하며 설교 표절을 범죄처럼 매도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설교 표절이 신앙양심과 목회자 윤리에 어긋나는 것임은 분명하다.

‘아몰랑’의 시대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아몰랑’이란 신조어가 있다. ‘아, 나도 모르겠어’라는 말인데, 생각하기 귀찮으니 그냥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도 있어 비논리적이거나 무책임함을 꼬집을 때 주로 쓰인다. 본래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여성비하 코드로 생겨난 말이었다 하고, 메르스 사태 과정에서 정부의 책임감 없는 처사를 빗대어 비판하는 상징어로 사용되면서 지금은 인터넷을 달구는 용어가 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피해를 주는 내용이라면 좀 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 상대방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내용을 일단 뱉어놓고 ‘아몰랑’ 하는 식으로 넘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개인으로도 그렇고, 공인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도 ‘아몰랑’ 식의 비논리와 무책임함을 보게 되면 실망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을 궤변으로 뒤집으려 하고 누가 봐도 뻔한 일을 모르는 척 우기는 것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오는 10월 입법의회를 앞두고 감리회 법과 제도에 대한 개혁논의가 한창인데, 자기의 주장만을 밀어붙이는 이들이 있다. 최근 끝난 총회 실행부위원회에서는 막무가내 식으로 자기주장을 고집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나 소문을 근거로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이도 있었다. 총실위 뿐이 아니다. 각급 위원회나 회의 과정을 지켜보면 자기 논리 안에서도 상충되는 억지 주장을 펴는 이가 꽤 많다. 평소에는 감리교회의 부정과 불법을 근절해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친소나 이해관계에 따라 정반대의 처신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본부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다가도 정작 본부의 불법을 바로잡는 일에는 비협조적이거나 거꾸로 이를 가로막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몰랑’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메르스 괴담’이 인심을 흉흉하게 하고 ‘아몰랑’의 조롱과 비아냥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이유는 결국 사회적 불신 탓이다. 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도 분명 문제지만, 정부의 말은 신뢰하지 않고 음모이론이나 자기식 주장만을 고집하는 이도 분명 문제다.

감리교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법과 제도의 개혁만이 아니라 갈라진 공동체의 회복과 영적인 성숙이 더 필요한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질서를 존중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자기주장만을 펼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도 차분하게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이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양보할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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