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
855호 사설

모두가 공감하는 법 개정

의약분업 이후 사라진 풍경이지만, 예전 종로의 대형 약국에는 전문 약사가 아닌 직원들이 매장을 지키면서 약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고가의 건강보조제를 강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질병에 필요한 약은 수 천원에 불과하지만, ‘약사’의 설명을 듣다보면 무엇엔가 홀려 수만 원대의 건강보조제를 사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곤 했다. 

오용이나 남용이 위험한 것은 약만이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사는 때로 불필요한 일들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에너지가 낭비되고, 때로 소모적인 갈등과 혼란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감리교회 안에서 추진되는 개혁과 입법의 문제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감리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는 성경이나 교리와는 다른 것이어서 시대가 달라지고 상황이 바뀌면 적절하게 고쳐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 기간 혼란과 갈등을 경험한 감리교회가 법을 고쳐 개혁을 이루고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얻으려 함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그런데 개혁특위와 장정개정위의 논의들이 하나둘 공개되면서 개혁이란 명분에 떠밀려 과도한 부분을 졸속으로 뜯어고치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개혁특위는 발족 직후 대중을 설득하는 개혁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개혁을 이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장정개정위원장은 활동을 개시하면서 감리회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개정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원칙과 초심이 잘 지켜져야 감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는 미래지향적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개혁의 과제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각오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교단을 만드는 혁명과는 분명 다른 일이다. 과도한 욕심에 무리한 입법을 서두르기 보다는 모두가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그런 개혁과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가급적 모든 논의가 투명하게 공개되길 바란다. 의견의 차이가 상당한 사안이 있다면 굳이 이번 회기에 개정 입법을 처리하기 보다는 장기적 과제로 논의를 이어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난 회기 무리한 입법이 추진될 당시 ‘일단 시행해 보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또 고치면 된다’는 식의 일부 주장도 있었는데 매우 무책임한 말이다. 법과 제도를 그렇게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현재 사용하는 교리와 장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면 시급하게 개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꼭 고쳐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이들도 꽤 많다. 법을 고쳐 감리교회의 개혁과 성장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겠지만, 개혁이란 명분에 떠밀려 정작 필요한 약보다 불필요한 건강보조제를 더 많이 사게 되는 그런 오류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 업무 소홀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33명을 채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해운조합의 운항관리 업무를 이관 받은 선박공단이 조합의 직원들을 다시 채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 재판 중인 사람이라고 해서 임용에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 공개적인 이유다.

채용의 결격 사유는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은 자’ 이기 때문에 재판중인 이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형이 확정될 경우 다시 파면이나 해임하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거나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고려했다는 대목에서는 선박공단이 상황의 심각성과 국민들의 정서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를 감추기 어렵다.

304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고 국가 전반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간 세월호 참사는 불과 일 년여 전에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유가족들은 거리에 나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데, 정부나 관련 업계는 너무도 뻔뻔하게 그 기억을 지워버리려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는 결국 제2, 제3의 세월호라는 안전 불감증의 위기 속으로 우리 모두를 내몰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나 업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도 사건·사고는 빈발하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 뻔뻔한 민낯을 드러낼 때가 많다. 성추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목사가 버젓이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을 낭비하고 유용한 파렴치한들이 교회법의 허점과 개인적 친분 등을 이용해 책임을 면제받는 현실이다. 최근 학내 분규로 몸살을 앓은 한 신학대학은 제기된 문제나 비리 의혹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 덮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개탄스러운 상황은 우리 모두를 공범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소설가 장정일은 최근 한 시사 잡지에서 교회의 이런 행태를 “엉성한 회개론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용서의 의미는 기독교 교회에 의해서 싸구려가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치유와 화해에서 용서는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 회개와 피해 보상의 과정 없이도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용서가 내려졌기 때문에 용서에 관한 교리는 해결책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일부가 되었다”는 소설가의 일침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현실이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