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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사설

신천지 소동 유감

강릉 한 감리교회 목사가 교회 청년을 구하려다 신천지 신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이 목사는 신천지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는 교인을 도우려다 폭행을 당했다 한다. 신천지가 한국 교회 안에 물의를 빚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런 식의 소동과 폭력을 행사한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사태가 반복될 때마다 교단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폭력 사태가 빚어진 직후 강릉시기독교연합회는 변호사 지원은 물론 강릉지역 교회들이 연대하는 항의 집회 등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폭행 당한 목사가 소속된 감리교회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듯하여 안타깝다는 말이다. 

찾아보면 이런 일들은 많다. 서울에서도 한 감리교회 목사가 구원파와 시비가 붙어 힘겹게 법정싸움을 진행하고 있지만 교단의 지원은 드러나지 않고, 경마장 문제로 지역사회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목사의 주위에도 교단의 지원은 보이지 않는다. 

이단 문제 혹은 논란이 되는 사회 현안에 대해 교단의 정책이나 공식 입장이 있어야 하고 교단에 소속된 개체교회나 목회자, 교인들은 그에 따라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개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교단적으로 대응해 해결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특히 이번 강릉의 사건처럼 법적인 시비나 경제적 부담이 따를 때는 더더욱 개인보다는 교단적인 대처가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조직화 돼 있고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춘 이단 집단에게 개체교회가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다. 목회만으로도 힘겨운 목사들의 처지에서 이론을 정비하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가며 이단과 맞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이단의 행태에 분개하며 심각성을 말하다가도 막상 적극적인 대응에는 망설이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소속 교회를 보호하는 것은 어느 교단이건 본부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회원의 의무에 대한 규제만 강력하고 회원을 돌보고 권리를 지켜주는 일에 인색하다 보니, 본부에 대한 불신과 부담금 제도에 대한 불만이 쌓인다고 볼 수도 있다. 

감리교회는 법 개정 때만 되면 교단 본부를 축소한다 해서 야단인데, 개혁이 꼭 축소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속 교회의 어떤 필요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고 해결해 주는 그런 기능과 조직이 있다면 본부가 확대되고 강화된다 해서 개체 교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단이라고 해서 꼭 본부만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회나 지방회도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소속 교회와 같이 대응하고 같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조직적 특성에서 감리교회는 다른 교파보다 장점이 많다고 말해왔는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다.

자살은 해결책이 아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4천427명이라고 한다. 지난 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4천762명이라니 거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다. OECD 국가 중 10년째 자살률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있다.

자살의 이유는 각각이겠지만 사람의 정신력이 처한 상황에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이 됐다지만 여전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고 청소년들이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좌절하거나 최근 병영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들처럼 어떤 조직 안에서 소외와 갈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형 사건들 속에서 실제 잘못을 저질렀거나 혹은 억울한 누명을 썼다 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어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전직 대통령 한 분 부터 그런 잘못을 선택할 정도로 깊게 병들어 있다.    

최근 벌어진 몇 건의 자살 사건도 그렇다. 기업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성완종 씨의 자살, 그리고 최근 일어난 국정원 직원의 자살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논란을 증폭시켜 정치·사회적 갈등만 더해 놓았다. 얼마 전 수원에서 벌어진 여대생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자살한 것도 자칫하면 피해자가 실종으로 처리되고 사건은 미제로 남을 뻔 했던 아찔한 일이었다.

자살은 신앙적으로 볼 때 분명한 잘못이며, 세상적으로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선은 남은 이들의 가슴에 평생 상처를 주는 잔인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과 연루된 것이라면 진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된다. 억울하다면 떳떳하게 진실을 밝혀야 하고, 만약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시인해 잘못을 바로잡도록 돕는 것이 자살보다 훨씬 더 책임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모두가 힘써야 하겠지만 특히 교회가 앞장서 생명이 중시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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