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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것, 바르게 고쳐야859호 사설

입법의회를 석달여 앞두고 장개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정안의 방향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벌어지는 느낌이다. 장개위도 대략의 윤곽만 잡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 하여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장개위가 공청회 등을 거쳐 개정안의 틀을 잡아나갈 것은 분명하지만, 개혁특위가 제안한 내용이 하나 나와 있고, 감독협의회도 별도의 제안을 내놓은 데다 2013년 추진됐던 입법안을 다시 다루자는 주장까지 더해진다. 여기에 은급법이나 연회 통폐합에 대한 개별적인 찬반 의견이 속출하고, 일부에서는 장개위의 개정안과 별개로 현장 발의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  

각각의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어떤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법과 제도로써의 지속성을 갖기도 어렵다는 생각이다. 또 어떤 주장은 기발하긴 해도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내용도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수용해 법을 고치다가는 법이 엉망이 될 뿐이다. 문제는 그런 내용들이 외부의 제안 뿐 아니라 장개위의 논의과정에서 일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입법의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당연히 법을 고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입법의회를 연다 해서 꼭 법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질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논란이 많고 요구가 많은 상황이라면 꼭 이번 입법의회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쯤 물러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모두가 공감하는 개선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논의는 무성하지만 정말 시급히 고쳐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도대체 왜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렇게 만든 법이 시행됐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지 법을 개정하기 이전에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연회 통폐합이나 본부 구조 개편 같은 것이 하나의 사례다. 모두들 당연한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재정적 문제 외에는 명쾌한 이유를 내놓지 못한다.

정회원 선거권 확대 문제도 그렇다. 장개위의 결단이 선거문화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는 대찬성이다. 하지만 그걸 연회에서 하자니, 각 연회의 일정을 통일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감독회장 선거 투표함을 보관할 것인지 아니면 순차적으로 개표해 합산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또 그렇게 법이 고쳐지만 지방회에서 연회 대표를 보낼 때부터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문제와, 4월에 선거를 하려면 연초부터 선거일정에 돌입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풀어갈지도 고민이다. 무엇보다도 연회에서 감독회장 혹은 연회 감독이 선출돼 당선자 신분을 가질 때 반년 가까이 현직 감독과의 갈등이나 레임덕 현상이 벌어지는 사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충분한 검토와 보완이 꼭 있어야 한다.

은급이나 교역자 생활보장법 같은 문제는 엉켜있는 실타래를 한쪽에서만 풀려 하니 점점 더 꼬이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솔직하게 문제의 근원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본부 부담금을 1%라 해놓고 그것의 8할을 은급이나 연회 지원금으로 빼내려 하는 것도 제대로 된 법은 아니다. 그런 식의 배분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법에 명시할 거라면 본부 부담금은 0.2%로 하고, 은급이나 연회 부담금을 올리는 것이 원칙적으로 정당한 일이다. 본부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면서 그 본부를 관장할 전임 감독회장이 왜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개혁을 하려면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진행하는 법 개정은 결국 땜질에 그칠 뿐이며, 잘못하면 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의 오명을 쓰게 된다. 지금 논의되는 수준이라면 이번 입법의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해도 2년 후에는 또다시 고치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염려를 감추기 어렵다.   

하나 더 사족을 달자면, 모두가 조금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떠도는 소문으로 상황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 당장 비가 새는 부분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붕 색깔에 대한 논쟁이라면 충분한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친 다음 칠을 하는 것이 맞다. 지금 우리의 논의가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떤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인지 우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설사 꼭 해야 하는 일이라 판단이 내려진다 해도,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자세로는 문제를 바르게 풀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머리수나 어떤 권한으로 밀어붙이는 방법, 누군가를 압박해 일을 풀어가는 방법은 당장에 성취감이 있고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또 다른 갈등과 후유증을 만들뿐이다.

중용(中庸)에 보면 ‘금의상경’(錦衣尙褧)이란 말이 나온다. 비단옷 위에 엷은 홑옷을 덧입는다는 말로 화려함을 감추는 군자의 덕을 말해 준다.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 당장 선명해도 나날이 시들어가는 소인의 도가 아니라 은은해도 날로 빛을 더하는 군자의 도를 실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옳다 여겨져도 자기의 생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의 선을 모색하는 그런 감리교회가 되면 좋겠다는 말이다.

꼭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거쳐,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감리교회를 만들어 가는 그런 입법의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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