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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사설

전략적 사고와 큰 그림

국가의 전략에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보’, ‘확신’, ‘파워’, ‘큰 그림’(big picture)인데, 꼭 국가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듯하다.

감리교회는 지금 장정개정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10월에 열리는 입법의회에서 다루게 될 장정개정안 마련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개위가 대략적인 틀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고 두 차례 열린 공청회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설하고 말하면 장개위의 개정안 방향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감독제도나 본부 구조개편, 연회 및 지방 통폐합, 은급법 제도 등에 대한 반론이 많고, 3개 신학대학 및 애향숙에 대한 한시적 지원 검토도 부정적 여론이 높다. 감독들의 요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한껏 기대를 높였던 개혁특위의 성과도 미미한 수준이다. 

본부나 연회 등 구조 개편의 핵심논리는 결국 비용 문제로 결부되고, 은급 개혁이나 교역자생활보장법 등의 제안도 돈 문제로 해법이 막힌다. 물론 감리교회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재정적 부분을 간과할 수 없음은 잘 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를 향한 큰 그림이 돼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조직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축소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반대도 가능해야 한다.  

청나라 때 장조(張潮)가 쓴 잠언집 ‘유몽영(幽夢影)’에는 ‘북원적월’(北轅適越)이란 말이 나온다. “북으로 가려던 수레가 남쪽으로 간다”는 뜻인데, 다산 정약용은 이 말을 인용해 잘못된 선택과 그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동서남북은 일정한 방위여서 사람들이 이것으로 방향을 가늠하지만 전후좌우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일정함이 없다. 문제는 이 둘을 혼동할 때 생긴다.

요즘 세상은 빠른 것과 변화를 트렌드처럼 여긴다. 하지만 바꿔야 할 것과 바꿔서는 안 될 것이 분명히 있다. 이것을 혼동해도 문제가 생긴다. 바꿀 것은 바꾸고, 바꿔서 안 될 것은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인가 바꿨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하다가 엉뚱한 결과 앞에 당황하기 일쑤다. 

지금 감리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장정 개정 논의들이 과연 미래 감리교회를 향한 ‘큰 그림’을 바라보며 하는 것들인지 우선 궁금하고, 장개위가 검토 중인 개정안의 내용들이 혹시라도 바꿀 것은 안 바꾸고, 안 바꿔도 될 것은 바꿔서 결과적으로 북원적월의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과세논쟁, 이제는 지겹다

종교인 과세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종교인 과세를 또 들고 나왔기 때문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반복되는 과세 논쟁이 지겹기까지 하다. 결국은 또다시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란 판단이 지배적인 탓도 있다. 일단 내년에 총선이 있고, 기독교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이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장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정부 당국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 것만 봐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계를 압박해 협조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정부의 과세방침이 힘을 얻어 입법까지 진행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종교인 과세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그런 가능성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런 논란이 반복될수록 손해보는 것은 교회의 이미지다. 사회적 여론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종교인 과세를 꺼내들었다가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교계의 반발을 이유로 슬그머니 철회하는 소동이 반복되고 이를 주도하는 정부 당국이 밉상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조세형평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고 종교계의 협조를 구하면 된다.  굳이 종교계의 자발적 협조가 우선이라 판단했다면, 일방적 발표나 여론몰이 같은 압박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 창구를 가동해 종교계와의 실질적 협의에 나서야 한다.

교회가 원하는 것은 어떤 특혜나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세금 혜택이 아니다. 또 투명한 조세 질서 확립을 위해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단지 종교인의 활동을 근로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원칙적인 부분이나 종교 활동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시도에 대한 거부감이 있음을 당국도 이해해 줘야 한다.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종교인 과세를 처리할 것이 아니라 교회 현실에 맞고 종교계의 협조가 가능한 합목적적이고 합리적인 내용의 법안을 만들어 제시할 책임이 당국에 있다.

교회도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될 문제가 아님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정부의 과세원칙이 분명하고 사회 여론도 그것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종교 이기주의나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감리교회 안에서도 종교인 과세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볼 것이 아니라 심도 있는 논의와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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