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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사설

입법의회, 호시우보의 자세로

정치현안에 시달려온 야당의 한 정치인이 초조감을 토로하면서 ‘호안우행’이란 어록을 남겼다. 본래 호안우행 보다는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는데, 한자 의미 그대로 호랑이같이 사물을 보되 행동은 소처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한 번 더 풀어내면 호랑이처럼 멀리 볼 수 있는 시야와 소처럼 꾸준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자세를 지키겠다는 말이 될 것이다. 어쩌면 입법의회를 앞두고 있는 감리교회에도 필요한 말일지 모르겠다. 
법이나 제도를 만들거나 혹은 정비하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예리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신속보다는 신중이 더 많이 요구된다. 섣부르게 법이나 제도를 뜯어 고치려다가는 미래는커녕 현재까지 망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추구하는 목적이나 방향이 다르고, 운영 생리도 판이하게 다르다. ‘효율’이나 ‘생산성’은 좋은 말이지만, 교회구조나 선교 사업에 적당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또 문제 해결에만 급급해 법의 구조를 허술하게 만들거나 전후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것도 잘못이다. 자칫 더 큰 문제를 야기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변화나 개혁이란 단어에 취해 법과 제도를 이리저리 바꾸려 시도하는 일이다. 법이나 제도가 항구적일 수는 없지만, 요즘 감리회처럼 2년마다 틀까지 다 바꾸는 작업을 반복하는 소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거듭 지적하지만, 감리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꼭 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빨리 그리고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초조감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장정으로도 감리회를 운영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쟁점 사안들은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도 아니다. 따라서 입법의회가, 그리고 입법의회 회원들이 좀 더 신중한 자세로 개정안을 검토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개정하는 현명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모였기 때문에 인사치레처럼 혹은 통과의례처럼 법을 고치는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감리회의 제도나 정책이 최소한의 일관성은 가지고 유지될 수 있도록 입법의회 대표들이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황소걸음이다.

 

교과서 논쟁을 멈춰야

일반인에게는 영화 제목으로 더 친숙한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톨릭의 성인추대 심사에서 추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악마’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개념이다. 이들은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활성화시키거나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조직의 집단사고를 막고자 하는 곳에서 두 번 생각할 수 있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정치나 국가 운영도 이런 시스템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정책이나 사업을 결정할 때 집단사고나 당리당략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정치하는 이들은 그런 여유를 갖기 힘든 모양이다.
지도자에게는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편의 처지나 주장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결단이나 추진력이라기보다는 독선에 가깝다.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 교과서 소동도 그런 경우다. 좌파 성향의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가르친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다. 또 교과서 대부분이 좌편향 시각에서 쓰여 있어 우리 현대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하지만 그 해법이 ‘국정 교과서’라는 정부의 입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왜 이 문제가 논란이 되는지, 상당수의 역사학자들은 왜 그것을 반대하는지, 심지어 교회와 사회단체까지 들고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부가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해 봤어야 한다. 게다가 정부가 제시한 사례들이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정부를 그대로 믿고 따를 수 없게 만든다. 너무도 허술한 정부 당국이나 여당 정치인들을 보면, 정말 이 제안이 정부의 시스템을 거쳐 판단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교과서 소동에서 정부 편에 서 있는 자유총연맹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와 정치권, 학계에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 말처럼 지금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소모적인 교과서 논쟁은 한시라도 빨리 종식돼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좌파도 문제지만 또 다른 왜곡을 근거로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해온 정부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회귀,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그 방법이 손쉽게 보이긴 해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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