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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사설

입법의회 유감

한동안 관공서를 중심으로 ‘불필요한 일 버리기 운동’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불필요한 일을 줄여 행정력 낭비요인을 제거하고 생산적인 핵심역량은 강화하자는 취지에서다. 불필요한 일 버리기는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처럼 인식됐고, 어느 전문가는 불필요한 일을 가려내는 기준을 다음과 같은 6가지로 제시하기도 했다. 첫째 필요 이상으로 처리되는 과잉업무, 둘째 불필요한 절차들의 개선, 셋째 불명확한 업무나 중복업무, 넷째 비생산적 제도, 다섯째 불필요한 회의, 여섯째 아웃소싱 및 전산화 가능 업무 등이다.

이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순 없겠지만, 감리교회의 현실과 이번 입법의회의 결과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쉬움이 크다. 자문위원 제도와 전자투표 도입이라는 운영 측면의 혁신, 의장의 돋보인 진행능력을 빼고 나면 이번 입법의회의 내용과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법안은 대부분 부결되고 통과된 일부 법안도 시간에 쫓겨서인지 아니면 입법의회 회원들의 관심 밖의 일이어서인지 내용상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처리한 인상이 짙으며, 그마저도 다 처리하지 못해 다시 입법의회를 열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가장 큰 책임은 장정개정위원회에 있다. 의욕까지 탓할 순 없겠으나 전자투표 등으로 예년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빨랐음에도 정해진 회기에 다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개정안을 내놓은 것부터 잘못이다. 게다가 개정안의 주요 부분에서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아 장개위의 역할에 대한 불만이 노출됐고, 결국 현장발의가 빈발하고 수정동의가 속출하도록 한 책임이 크다.

그래도 많은 내용을 처리했다고 항변할 순 있겠으나 다뤄진 내용들이 감리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개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통과됐다는 내용들이 과연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희망을 제시했는지, 변화와 혁신을 위해 불필요한 일을 제대로 버린 것인지 평가해 보면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6가지 기준에 적용해 보면 오히려 바꿔진 법안의 내용들이 이전보다 더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냈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할 형편이다.

감리교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라면 이런 비생산적 입법의회 시스템부터 바꾸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일 버리는 기능을 감당해야 할 입법의회가 오히려 버려져야 할 불필요한 일의 하나처럼 비판받는 현실을 입법의회 회원들은 물론 감리회 공동체가 냉정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의 처신

공자는 어떤 사람을 선비라 부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행기유치’(行己有恥)란 대답을 남겼다. 행동함에 있어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중 하나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고 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굳이 이런 공맹(孔孟)의 도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회인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잘못된 처신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당대의 언론인 김중배 씨는 동양의 원치의식(原恥意識)을 성서의 원죄와 비교하면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세태를 개탄한 적이 있다. 그는 ‘치격’(恥格)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부끄러운 시대를 살았던 언론인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고백은 다시는 그런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의 뜻으로 전해지고 세상을 일깨우는 경종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원죄(原罪)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모두 죄인이라는 고백은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악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 돼야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로 연결돼서는 곤란하다.

세상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날로 타락하여 혼탁해진다.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과 기업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에 등장한다. 답답한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이 변명과 자기합리화 때로는 적반하장의 태도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사카쿠치 안고(坂口安吾)의 타락론(墮落論)에 보면 사회적위기는 ‘집단적 타락증후군’에서 온다. 다른 사람 특히 지도층 인사가 자기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지려하지 않고 오히려 변명으로써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이를 본따서 자기의 범죄도 합리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종교인이라면 더욱 그런 요구를 받아야 한다. 최근 불교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종교계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으며, 특히 개신교 및 개신교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는 3대 종교 중 꼴찌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다. 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부터 돌아볼 이유가 충분하다. 이번 입법의회에서 논란이 된 감리회 지도자 몇몇의 발언도 그런 경우다. 현실을 내세워 불법을 합리화하거나 격앙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태도, 집단 이기주의를 당연시하는 언행들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自畵像)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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