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
886호 사설

교회질서, 상식부터 바로 세워야

총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정치인들의 막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당 대표를 향해 막말을 하고 후보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폭로되면서 퇴출위기에 몰렸다. 문제는 이 의원이 청와대와 가까운 친박그룹의 실세라는 점이다. 이 의원은 사과한다면서 도리어 큰소리치고 같은 계보의 정치인들이 편들고 나서 피해자격인 당 대표에게 사과를 받아주도록 압박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선은 피해자가 사과의 태도나 내용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편이라 해서 봐주고, 힘이 있다 하여 가해자가 도리어 목청을 높이는 것은 한마디로 몰염치한 일이다.

교회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교단의 비리와 관련한 재판에서 화해와 합의라는 명목아래 고발당한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발자는 고발취하와 합의를 강요당하면서 피고발자의 요구를 더 들어줘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총회 심사위나 재판위가 그런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상황을 만든 이유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도 유사한 소동이 반복된다. 한 연회에서 불법의 혐의를 받는 실무자가 엉뚱한 소송을 일으켜 상급자인 감독을 고소하면서 자신에 대한 조사를 덮으려 시도한 일이 벌어졌다. 가당치 않은 일인데, 심사위가 화해를 내세우며 거들고 나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혐의가 부당한 것이라면 그것대로 조사에 응해 결백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상급자에게 다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직무와 관련한 지시를 거부하거나 정당한 행정집행을 방해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심사위 뿐 아니라 연회의 중책을 맡은 이들 가운데 그런 주장에 동조하여 교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재판법이 처벌이나 단죄보다는 권징을 통해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음은 잘 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시비비부터 명백히 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가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리에서 어떤 합의나 화해가 가능한 것도 상식이다.

불법이 벌어지는 현실에는 애써 눈을 감고 화해와 합의만을 부르짖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고 지혜로운 모습도 되지 못한다. 감리교회를 점점 더 병들게 하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알파고 바둑을 보면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은 결국 4승 1패, 컴퓨터의 승리로 끝나면서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승패를 떠나 바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고, 인공지능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바둑의 영역조차 컴퓨터에게 내준 인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들을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이라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일간지에 실린 분석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2년 전쯤 예측했다는 내용인데, 20년 후 특정 직업이 컴퓨터와 로봇에 의해 대체될 확률이 텔레마케터 99%, 회계사 95%, 경제학자 43%, 소방관 17%, 기자 11%, 작가 3.8%, 종교인 0.8% 등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의 핵심은 기자나 작가와 같은 글 쓰는 직업의 생존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높게 나온 종교인의 생존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는데, 어쩌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컴퓨터가 성직자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자들이 그것을 믿음의 영역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와 성직자들이 마냥 마음 놓을 일은 아니다. 이 기사가 관심을 끌고 SNS에 유포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해설 기사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험한 바로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기사를 보여주며 작성자가 로봇이라고 했을 때 기자라고 말했을 경우보다 오히려 기사 신뢰도가 높았다. 미래에도 기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기자가 아니라 신뢰도 높은 언론사의 신뢰도 높은 기자일 가능성이 크다.”

언론에 대한 비판적 지적이지만 교회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신의 영역이나 종교의 기능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도 교회는 살아있고, 성직자가 있겠지만 사회적 신뢰 부분에서 인공지능만도 못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번 대국에 대해 세간에는 “이세돌은 대국을 했지만 알파고는 계산을 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바둑을 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데이터에 의한 연산과 처리능력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최근 교회 안에도 데이터나 계산에 의해 판단되고 처리되는 일들이 많아진다. 감리교회 안에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일들도 상당수 그런 모양으로 진행된다. 교회의 일들이 그저 경제성과 효과로만 평가돼 알파고의 바둑처럼 ‘계산’되고 ‘처리’된다면 과연 바른 방향일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