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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호 사설

총대쿼터제 정착을 위해

올해부터 시행되는 총대쿼터제가 화제다. 아직 연회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초 우려했던 선출과정의 혼란은 최소화된 것으로 나타나 다행이라 여긴다. 연회가 뒤늦게 조정에 나섰고, 각 지방들이 잘 따라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총대쿼터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도 이번 연회기간 드러났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각 연회의 재량에 맡겨진 총대 선출의 기준이 통일돼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그런 일이 없지만 자칫 총대 선출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갈등과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성과 50대 미만 총대 선출에 대한 세칙이 분명하게 정해져야 한다. 차기 입법의회에서 관련법이 정비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연회간 협의나 본부와의 행정 조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문제다. 

또 지방회에서 연회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부터 50대 미만과 여성 총대에 대한 안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느 연회의 경우 평신도 대표 중 50대 미만은 아예 없는 지방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부 지방에서 여성이나 50대 미만의 목회자 대표를 뽑는 기준을 해당자중 연급 순으로 한 것도 과연 쿼터제의 취지에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연급순을 적용하면 선출과정은 간단하겠지만 또 다른 등급제가 되고 주먹구구식 기준점이 된 50대의 역차별 불만을 키우게 된다.

여성계 일각에서 염려하는 것 중에는 여성 15%의 총대 의무비율이 오히려 여성의 참여를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분명히 할 것은 법이 정한 여성과 50대 미만의 의무비율이 ‘최소 규정’이라는 점이다. 이를 ‘최대 규정’처럼 해석해 15%만 여성에게 할당하고 나머지 모두를 남성으로 채우는 식의 법 적용은 곤란하다. 

좀 더 성숙한 감리교회가 되고, 좀 더 생산적인 총회 구조를 만들려면 총대 쿼터제를 보완하고 더욱 확대해 소장층과 여성, 그리고 청년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가야 한다. 그것이 감리회의 신진대사(新陳代謝)를 원활하게 하고 미래를 밝게 하는 길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깨어져야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의 열띤 경쟁 못지않게 언론 매체가 쏟아내는 판세 분석과 전망에 관심이 모아진다. 야권의 분열과 여당의 실망스런 공천 잡음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분석이 엇갈린다. 상식적으로만 보면 수준미달의 집권 여당이 심판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야당이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런 분석이 나오는 배경에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신조어가 있다. 야권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여당을 지지하는 최대 40% 가량의 콘크리트 지지층 때문에 정권교체가 어렵고 세상이 변화되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질 수 없다. 저급한 정치 행태와 막말 물의 끝에 정당에서 축출된 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지역구 1위를 달릴 수 있는 우리 정치의 현실은 한마디로 어이없는 코미디다. 

하지만 여당 쪽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당 보다 적을지는 몰라도 야당에도 굳건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한다. 무책임한 막말 소동과 종북 논란, 패권주의 비판이 이어져도, 한 때 구시대 청산대상으로 지목하던 인물에게 정략적 판단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몰아줘도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야권단일화와 정권심판이라는 식상한 레퍼토리에도 또다시 집착하는 열혈 지지층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처럼 극단적 대치 양상을 보이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이면에 영호남의 지역감정이나 패거리 정치에 기인한 진영논리가 자리 잡고 있음은 쉽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콘크리트 지지층이 깨어져야 선거혁명이 가능하고 세상을 바꿀수 있다.

교회 선거도 같다는 생각이다. 감리교회도 공식 선거기간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감독 선거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감독 출마를 결심한 이들이 사실상 선거운동을 시작했고, 감독회장을 꿈꾸는 이들은 연회가 열리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한다. 선거가 있고 후보자가 있으면 선거운동은 당연하고 탓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감리회 선거의 가장 큰 동력이 학연이나 지연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후보로 나선 이들이 감리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인품과 정책적 비전이 분명하게 서 있는지를 알려하기 보다는 어느 학교, 어느 연회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과 판단의 무게가 쏠려 있다. 이런 식의 선거는 감리교회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연과 지연은 세상 정치의 지역감정이나 진영논리와 다를 바 없다. 교회 정치도 그런 식이라면 희망을 갖기 힘들다.

세상의 선거는 이제 금권 시비 하나는 줄여놓았는데, 교회는 그 조차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번 총선에서의 변화에 일말의 희망을 갖는 것처럼 다가오는 감리교회 선거도 학연이나 지연에 의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깨어져 나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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