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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부탁해”군선교현장에서 : 이현범 목사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들은 늘 죽음을 준비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사생관 교육’을 받는데 이 교육은 군종장교가 주관해서 합니다.

저는 사생관 교육을 하면 묘비명 쓰기를 꼭 합니다.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내 인생을 한문장으로 요약해 준다면 어떻게 쓰여지길 원하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적어낸 답들을 보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자 좌우명임을 알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어느 날 또 한 번의 교육이 있어서 묘비명 쓰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앞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멋있는 답들을 발표했습니다. 잘 정리해주고 교육을 마쳤는데, 제 앞에 있었던 초급간부 한분이 옆 사람과 서로 뭘 썼는지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은혜는 열배로, 원한은 천배로 갚은 사람”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물어봤던 분도 깊이 공감을 하면서 맞다고, 이게 현실적인 거라며 서로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발표한 사람들 이외의 것들을 읽어 보았더니 “돈에 파묻혀 죽은 사람”, “나 홀로 인생”, “원하는 건 반드시 따냈던 사람” 등등의 글이 있었습니다. 소위 ‘현실적’인 묘비명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묘비명들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이 말들이 세상 사람들이 은혜에 목말라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치는 비명 같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목사, 은혜를 부탁해.”

군종목사는 위문품과 늘 함께 합니다. 어딜 가나 먹을 것이 함께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농담 섞인 말로 “내가 목사인지 음식 배달원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들의 헌금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이 나눔이 청년들의 가슴 속에 ‘은혜’를 심어주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심결에 했던 모든 선행들, 따뜻하게 건네는 모든 말들,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 손잡아주며 하는 기도들은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이었습니다.

지난 성탄절에는 신우 10명이 기특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은혜의 날에 이날 하루만큼은 전우들이 야간근무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새벽에 한 시간씩 맡아서 근무를 대신 서주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주말 근무를 바꿨던 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자발적으로 했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의무를 넘어서서 은혜로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 이것이 교회임을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웁니다.

종종 병사들이 이 은혜의 이유를 묻습니다. 그럴 때면 망설임 없이 먼저, 뜨겁게, 내 몸 같이, 끝까지 사랑해주신 예수님 때문에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소개해주면 주님께로 돌아오는 탕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군선교 현장은 지금도 은혜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곳 보다 은혜가 필요한 곳입니다. 복음은 은혜이고, 반드시 은혜를 통해 전달됩니다. 누군가의 돈, 땀, 말, 기도라는 은혜는 복음을 싣고 나르는 철로가 됩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한마디를 기억하며 겸손히 교회와 부대를 섬기고 싶습니다.

“이 목사, 은혜를 부탁해.”

이현범 목사
중위, 26사단 75여단 승공교회

신동명 부장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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