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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군선교현장에서-허성욱 목사
   
 
     
 

매주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형제들이 돌아가고 나면 우리 열린문교회 군종병은 최적의 비율로 뜨거운 물과 커피믹스를 혼합하여 30명 분량의 커피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습니다. 초코과자, 보온병에 담긴 커피, 종이컵, 그리고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와 랜턴까지 챙기면 ‘수요 야간초소 위문’을 위한 준비가 끝납니다.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위문품을 들고 위병소와 탄약고,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경계 근무자들을 찾아갑니다.

캄캄한 어둠 속을 랜턴 하나에 의지해 가다보면 ‘라이트 꺼,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사히 수하 절차를 마치고 철조망까지 통과하고 나면 불시 순찰인 줄 알고 잔뜩 긴장한 채 ‘이기자!’ 경례를 하는 형제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 형제의 손을 잡으며 “반가워요!” 라고 인사하면 그제야 병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준비해 온 초코과자와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따라주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형제들도 있는 반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형제들도 있습니다. 근무 중 취식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징계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대는 연대장님께서 군종장교와 함께 있는 동안 취식을 완료한다는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취식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넙죽 받아드는 형제들은 위문을 받은 경험이 있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계 근무 특성상 한 초소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형제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초소가 어두운 탓에 얼굴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방한 용품으로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겨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위문품이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커피믹스와 초코과자는 병사들이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보람도 크지 않습니다. “요즘 힘든 일 있니?” 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오” 또는 “괜찮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아무리 군종장교이고, 목사라고 해도 병사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불편한 ‘간부’ 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2시간 동안 9곳의 초소를 다니며 23명을 만났음에도 의미 있게 나눈 대화는커녕 기억나는 얼굴조차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날은 군종장교로서 병사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요일이면 여전히 초소 위문을 갑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그들과 만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군종장교 한 사람과 커피 한 잔, 그리고 몇 마디의 격려뿐이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사용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널 응원하고 지지해’, ‘힘들고 지칠 때 네가 기댈 곳이 되어줄게’, ‘언제나 너와 함께 할게.’

얼마 전 초소 위문 중에 “혹시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라고 묻자, 병사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팅커벨”이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것이 병사들 사이에서 저를 부르는 별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병사들까지도 소문을 듣고 은근히 위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피터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요정 팅커벨.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병사들의 삶 속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종종 초소에서 저를 만나고 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작은 자 하나까지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합니다.

바라만 봐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있습니다.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 만나면 나 자신과 나와 연관된 모든 것까지 더욱 온전히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버틸 힘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너는 그런 사람인가?” 야간초소위문을 비롯한 저의 모든 사역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허성욱 목사

대위군종 73기 / 27사단

 

신동명 부장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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