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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성 119 - 결혼의 목표도 모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목표를 ‘행복’으로 잘못 알고 있다. 물론 가정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너무도 귀한 축복이고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행복자체가 결혼의 목표가 되어서는 행복해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손으로는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행복에만 몰두하다 보면, 행복하지 못한 현실에 지치게 되고,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상대방에게서 찾게 되면 더욱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면 이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결혼제도를 처음 선포하시는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 24)”라고 되어 있다. 즉 “아내와 연합하여 행복해라”가 아니고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라”이다. 이 말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부부의 몸과 마음과 사랑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면 행복은 오지 말래도 자동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 됨’인 것이며, ‘행복’은 결국 ‘하나 됨’의 열매인 것이다. 

부부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연합’을 해야 하는데, 이 ‘연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웨다바크’이다. 이 말은 돕는 배필로서 완전히 밀착하여 하나가 됨을 의미하고, 또 다른 의미로는 ‘용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접이란 한번 부러진 뼈가 다시 붙으면 더 강력한 뼈가 되는 것처럼 부부가 강하게 용접이 되어서 하나가 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결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결혼의 목표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방법을 동원하고 노력도 하지만 정작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해서는 별로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 됨’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기 보다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유리컵이나 그릇을 깰 때도 있고, 교통사고를 낼 수도 있고, 배우자가 사소한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상한 감정을 있는 대로 다 들어내지 말고 하나 됨이 깨지지 않게 배려하라는 말이다. 즉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어떤 TV 방송을 볼까? 즉 어떻게 할까? 라는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리차드 칼슨 박사가 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에 보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모든 것이 사소한 것일 뿐이다”라고 역설한다. 즉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세월이 지난 뒤에 생각해 보면, 모두가 일상의 사소한 일이라는 것이다. 속 썩이는 자녀, 돈을 떼이거나 손해를 보는 것,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 사업에 실패를 경험하는 것, 진학 시험에서 낙방을 하는 것, 가족이나 친척들과 다투는 것 등의 일들이 너무 큰일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다 사소한 것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하나 됨이 파괴되고 도저히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부부가 진정으로 하나 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할 조건이 하나 있음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곧 “남자가 부모를 떠나(창2:24)”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부모를 떠나라고 하지 않으셨다. 여자들은 결혼을 해서 자녀를 임신하게 되면, 자동으로 부모를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자녀를 태중에 임신한 순간, 자녀는 남남이 아니다. 자기의 혈관과 신경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몸으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가 자기의 몸속에서 자라며 자신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엄마들은 자동으로 자녀와 동일시하게 되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자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모성애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부모를 떠나 자기 가정을 지키는 일이 자연스럽고, 라헬처럼 자기 가정을 위해 친정아버지 야곱의 드라빔도 훔쳐 올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 때 친정에 간 딸들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들들은 다르다. 아내에겐 무언가 기여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에게는 생명을 빚진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동일시하며 부모의 은혜를 갚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아내보다 부모에게 더 헌신하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부부가 하나가 되지 못한다. 이것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다. 그래서 말씀하신다. 여자 말고 남자들아, 너희들이 부모를 떠나야 하느니라. 

 

정택은 편집부장  yesgo@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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