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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의 의미와 이슬람 최후의 명령이슬람 이해와 무슬림 전도 ⑤

꾸란은 모든 종교적 문제의 최종적인 준거로 간주되어진다. 즉 신앙의 기본교리, 윤리적 행동의 원리, 사회와 정치 및 경제 활동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꾸란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책이다. 이슬람의 교리, 종교 의식, 윤리법이 모두 이 꾸란에서 나온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 꾸란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꾸란 번역본은 꾸란이 아니고 해설서라고 하면서 아랍어가 이슬람 종교의 언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꾸란 1장은 전 세계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마다 아랍어로 외워서 암송하고 있다.

최영길 박사의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꾸란 개요에는, “화자와 피화자가, 그리고 이야기의 방향이 아무런 예고없이 전환되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역사서와는 다르게 제시되고 있다. 인간과 우주에 관해서도 자연과학에서 언급되는 것과는 다르게 언급되고 있다”라고 계시에 대한 모순성을 인정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메카의 계시와 메디나의 계시의 내용이 전혀 상반된 내용이 있었다. 아무리 무함마드를 통해서 내린 계시를 믿고 순종하고자 해도 너무 내용이 모순되어서 혼동이 올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메카에서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은 사람들(꾸란 2:62)이라고 해 놓고, 메디나에서는 그들을 친구로 사귀는 자들은 이미 믿음을 버린 자(꾸란 5:51) 라고 했다. 또한 메카에서는 신·구약 성경을 진리로 인정(꾸란 3:3)했으나, 메디나에 와서는 그것이 변질되었다(꾸란 5:13)고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빙자하여 질문 금지령을 내렸다. 꾸란 5:101에 대한 두 가지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최영길 역) “믿는 사람들이여 여러 가지의 일을 물어서는 안 된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김용선 역)

질문을 금지시켜도 해결이 안 되고, “전후모순(前後矛盾)에 대한 불신자의 비난에 답하고 또 신자 사이에 생기는 의혹을 해명키 위해 낸 응답”으로서, 무함마드는 알라로부터 이전 계시를 취소하는 계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우리가 이전에 계시한 계시를 취소하였거나 혹은 망각하게 했을 경우에 그 이상 또는 그와 동등한 것을 주려하고 있다…”(꾸란 2:106 김용선 역) “어떤 말씀도 폐기하지 아니하며, 망각케하지 아니하되 보다 나은 혹은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시나니…”(꾸란 2:106 최영길 역)

인간은 누구도 알라의 계시를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지만 그 계시를 내리신 알라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전에 내린 계시를 취소할 수도 있고 변경할 수도 있고, 다른 것으로 대치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시된 두 구절이 서로 모순이 있을 경우, 나중에 계시된 구절에 의해서 이전에 계시된 것은 자동으로 취소된다는 것이다.(꾸란 2:106, 꾸란 5:15, 꾸란 13:39) 이것을 이슬람의 취소(Mansukh: 만쑤크)교리라고 한다.
만수크 교리에 의해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 최영길 역)라는 메카 계시의 대표적인 평화스런 구절이 취소되고,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꾸란 9:5 최영길 역)라는 메디나 계시의 구절에 의해서 대체된 것이다. 이것을 대체(Nasikh: 나시크)교리라고 하는데, 취소된 구절들을 꾸란에서 지워버리지 않고 남겨 둔 것은, 순진한 초신자들에게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위장시키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최후의 명령
이슬람의 최후의 계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나중에 계시된 것에 의해서 취소되어버린 구절을 믿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학자들에 의하면 꾸란 9장이 메디나에서 계시된 최후의 계시라는 것이 일치된 견해다. 그렇다면 메디나 최후의 계시인 꾸란 9장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까?

꾸란 114장 가운데 113장과는 다르게, 9장은 ‘자비하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구절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에 지금까지 맺은 모든 이교도들과의 평화 조약은 알라가 부여한 권한에 의해서 취소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너희가 불신자들과 맺은 계약에 대해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로부터의 면책선언이라.”(꾸란 9:1 최영길 역) 그리고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알라)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꾸란 9:5)라고 했다.

이 꾸란 9장 5절을 ‘칼의 구절’이라고 하며, 이를 지하드 명령이라고 한다. 즉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하드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하라…”(꾸란 8:39 최영길 역)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면, 이븐 압바스(Ibn Abbas)의 해석을 인용하여 “지구상에 한 사람의 불신자도 존재하지 아니할 때까지 지하드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계속>

 

   

김형원 박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슬람 연구원

신동명 부장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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