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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전략과 꾸란에 대한 의문들기고 : 이슬람 이해와 무슬림 전도 ⑥

타끼야(Taqiyya=위장) 전략

꾸란의 내용 중에는 아주 특이한 가르침이 있다. 세상을 정복하려면 이슬람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무모하게 대항하지 말고, 타끼야(Taqiyya:위장) 전략을 사용하면서 시간도 벌고 재정비하여 기회를 보라고 한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시지 아니하시나, 너의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니라…”(꾸란 2:225 최영길 역) “…또는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학대받을 우려가 있을 때는 예배를 간략하게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꾸란 4:101 김용선 역)
이 타끼야 전략에 의해 이슬람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모든 위장이 정당화된다. 예를 들면 꾸란을 번역할 때도, 꾸란 47:4에서 불신자들의 “목을 쳐라”(김용선 역)를 “목을 때리라”(최영길 역)고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매스컴이나 방송에서도 이슬람에 대해 혐오스럽게 여겨질 가능성이 있을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일부다처에 대해서 한국어가 가능한 외국인 이슬람 성직자가 어느 TV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슬람에서는 평생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꾸란에는 “화해를 통한 두 번의 이혼은 허락되나…”(꾸란 2:229 최영길 역)라고 되어있고, 이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혼 장(65장)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이혼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을 혐오할 것 같으니까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꾸란에 대한 의문들

꾸란은 무함마드 한 사람을 통해서 무려 23년에 걸쳐서 계시된 내용을 하나로 모아놓은 것이다. 무함마드 시대에 아라비아는 우상 숭배와 끝없는 부족 간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 시기는 말 그대로 “암흑 시대(Zahiliya)”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주어진 꾸란의 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꾸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함마드는 꾸란이 메카와 그 주변 아라비아인들이 구원을 얻도록 위해 계시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알라)가 그대(무함마드)에게 아랍어로 된 꾸란을 계시한 것은 그대가 어머니의 도시(메카)와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경고하고 일부는 천국에 있게 될 것이고 일부는 불지옥에 있게 될 아무 의심될 것도 없는 소집(심판)의 날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꾸란 42:7, 김용선 역)
무함마드는 아라비아인들의 계몽과 개혁을 위하여 이슬람 종교를 도입했다. 종교를 통한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한 것이며, 아랍인을 위한 종교로 시작했다. 또한 꾸란이 아랍어로만 계시(꾸란 41:3, 43:3, 12:1~2, 26:192~197)된 이유가 곧 아랍인을 위한 것이며, 지금까지도 아랍어로 된 꾸란 만을 정통 꾸란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이슬람은 아랍 민족 종교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꾸란이 성경을 확증할까?

무함마드는 꾸란의 목적은 이전에 하나님이 계시한 성경(구약과 신약)을 확증하는데 있다고 꾸란 10:37, 꾸란 3:3, 꾸란 46:12 에서 말한다. 그러나 다시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자기모순을 드러내면서,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믿을 수 없다고 꾸란 5:13에서 주장한다. 이 뿐만 아니라, 꾸란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 “예수는 마리아 아들로써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라.”(꾸란 5:75 최영길 역)
또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고 단지 승천했다고 한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4:157~158 최영길 역).” 이외에도 꾸란의 알라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적으로 여기는 신(꾸란 5:51)이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부인하는 신(꾸란 19:35)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을 확증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꾸란?

꾸란은 다음과 같이 인간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꾸란을 광명으로 하고 그것으로 그 분의 뜻이 있는 종들을 인도하도록 하였노라. 실로 그대(무함마드)는 인간을 옳은 길로 인도하리라.”(꾸란 4:52 최영길 역) 그러나 실제로 이슬람은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무슬림들이 지하드라는 명목으로 끝없는 정복전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불신자를 죽이고 배교자를 죽이라고 하는 등의 가르침은 인류 공동체를 더 혼잡스럽고 어둡게 하고 있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무함마드는 아랍인의 종교로 이슬람을 시작해서 이를 확장하기 위해 수많은 약탈과 전쟁을 했으며, 전쟁으로 점철된 그의 삶과 언행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인간의 옳은 길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형원 박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슬람 연구원

 

신동명 부장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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