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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國難 이겨낼 3·1운동 정신은
寶血 정신이다

감리회가 국난(國難)의 시기에 맞춰 3.1운동 정신을 고취시켜나가기로 했다.

각국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는 군주정치냐 민주정치냐, 제한선거제냐 보통선거제냐, 신분·계급을 두느냐 아니면 일체평등이냐 하는 등의 거대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기미년 대혁명을 겪은 우리에겐 이미 지난 것들이었다.

기미년인 1919년 3월1일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당시 조선에게 독립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독립 후의 정치체제까지 상상하는 건 사치였지만, 독립만세운동은 수백만의 남녀노소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 방방곡곡을 흔들었다. 일제가 총칼로 진압하고 불태우고 고문하고 죽였지만 왕조가 사라진 땅에 백성이 이토록 간절하게, 목숨을 걸고 이 땅의 주인으로 나선 것이다. 대혁명을 통해 주권자로 부상한 전체 민초들의 지배를 담아낼 정치적 틀은 오직 민주공화제 외에는 없었다.
유혈 없이 공화제로 순탄하게 이행한 국가는 역사상 없다. 우리에게 그런 시민혁명이 없지 않냐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지만 우리의 민주공화제는 분명 기미년의 대유혈을 치르고 얻어낸 것이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은 기미년의 사건을 ‘3·1혁명’으로 파악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은 주권의 소재를 국왕으로부터 국민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황제 혹은 국왕이라는 덧씌워진 후광을 빼앗고, 때로는 그 지존자의 생명까지 박탈하거나 그 국왕의 실체는 물론 그림자까지 지워내는 작업이 혁명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혁명은 거대한 유혈을 동반했다.

일제하에 여러 무장투쟁과 비무장 독립운동도 있다. 독립을 추구한 항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3·1운동은 다른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미년의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이민족의 전제를 전복한 동시에 5000년 군주정치를 혁파한 사건으로, 우리 민족의 혁혁한 혁명의 발인(發因)이며 개벽(開闢)이란 점을 1941년 ‘대한민국 건국대강’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3.1운동은 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민족·민주혁명으로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은 바로 전 백성들의 핏방울로 창조된 국가이며 예수님의 핏 값으로 구원받은 성도와 그들로 구성된 정동제일교회, 종교교회, 수표교교회, 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같은 감리교회가 당시 민초들이 흘린 핏방울의 중심에 있었다.

감리회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3.1운동 정신으로 대한민국 변화와 갱신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감리회는 국난 극복을 위해 선배들의 3.1운동 정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예수님과 선배들이 흘린 핏방울을 기억해야 한다.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하기까지 기도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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