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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신 힘으로 오늘도 달립니다” 김욱동 장로
3살 때 부상으로 굽은 등 … 역경딛고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
하나님 찬양하는 시 쓰고 매일 자전거로 체력다져
2016년 12월 14일 (수) 16:05:39 김혜은 차장 sky@kmctimes.com

   
2007년 7월, 영남선교대회를 앞두고 인천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이어진 희망달리기 주자들 가운데 이를 선두에서 이끈 사람이 있다. 김욱동 장로(성민교회, 담임 정진권 목사)가 그 주인공.
7월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간 것도 놀라운 일인데, 등이 굽어 불룩한 그의 장애는 놀라움과 감동을 배가시켰다.

김욱동 장로가 장애를 가진 것은 세 살 때의 일이었다. 3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이 끊어졌던 김 장로를 가족들은 이불을 덮어 마루 한쪽에 두었다. 태워버릴 생각에 아버지가 지게에 석유 한 말을 지어왔을 때 “욱동이가 움직였어요”라는 다섯 살 위 누님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불탔을 운명이었다.
생명은 부지했지만 3년 동안 매일같이 병원에 다니며 하루에 스무대씩 주사를 맞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아픔이었다.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김 장로는 지금도 특유의 병원냄새를 맡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처음엔 등이 굽는 장애가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조금씩 성장하면서 척추가 자라날 때 등은 굽어만 갔다. 운동은 해볼 생각도 못하고 학창시절을 지낸 그가 어떻게 운동왕으로 거듭났을까?

“서울에 올라와서 한참이 됐지요. 키가 160밖에 안되는데 몸무게가 참 많이 나갔어요. 움직이는 것도 참 힘들었지요. 그런 저에게 한 친구가 마라톤을 권했습니다.”

처음 운동장을 나가 300미터를 뛰고 김 장로는 한계를 느꼈다. 갑자기 무슨 운동인가? 하는 생각에 포기하려는 그에게 친구는 일주일동안 300미터만 뛰고 그 다음 주부터 한 주에 100미터씩 늘려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300미터로 시작한 달리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8km까지 늘었고, 첫 경기로 출전한 분당 하프마라톤을 2시간 2분만에 완주했다.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 도전까지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마라톤 경기가 주일에만 했어요. 풀코스를 뛰고 싶어도 주일성수를 해야하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죠. 한번은 경주 벚꽃마라톤이 토요일에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금요일에 일을 마치자마자 야간버스를 타고 가서 풀코스를 뛴 적도 있습니다.”

42.195km의 긴 거리를 뛴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김욱동 장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다. 한양대에서부터 성산대교, 여의도를 거쳐 광진교를 돌아 청담대교까지 오는 길을 왕복하는 100km를 14시간 20분 만에 완주하자 그를 보는 시선들이 놀라움을 넘어 감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밤새 달리는 이 대회는 출전자의 40%가 포기할 만큼 어려운 코스였기 때문이다. 김욱동 장로는 이후에도 총 5번의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해냈다.

그의 마지막 마라톤은 서울에서 경주까지 달리는 희망달리기였다. 당시 ‘울트라마라톤의 꽃’이라고 불리는 강화도에서 경포해수욕장까지 317km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던 김 장로는 영남선교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마라톤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 당초 서울부터 수원까지만 달리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가 60-70대의 목사와 장로인데다가 마라톤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을 보고 김욱동 장로는 부산까지 함께 하기로 결단한 것. 그러나 김 장로는 “마라토너로써의 최종 꿈은 포기했지만, 부산까지 달리면서 하나님 나라 상급을 쌓게 된 것이 내게는 더욱 기쁜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왜 그렇게 뛰었을까? 그가 고독한 자기만의 싸움을 이어간 여러 가지 중 하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등이 굽어 살면서 어려서부터 놀림도 많이 받고, 불편했지요. 울트라마라톤을 두 번 뛰었을 때 즈음 동창회에 갔는데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왜 그렇게 뛰냐, 힘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 친구들을 향해 ‘너희 때문에 뛰는 것도 있다. 너희들이 나 클 때 많이 놀려서 가슴에 응어리가 졌는데 말로만 용서한다는 것으로는 되지않아, 내가 너희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김 장로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어려서부터 똑똑한 머리 덕에 대학을 다니면서 과외수업을 했지만 여동생을 공부시키면서 정작 자신은 휴
   
학을 반복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왔지만 불편한 몸에 연좌제까지 그를 옥죄오는 시선과 사회적 제도에 그는 취직도 쉽지 않았고 사업을 하려해도 선입견이 있어서 입지가 좁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60여년을 살아왔다.

불편한 몸으로 마라톤을 한다고 할 때 모두가 말리고, 의사마저 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뒤 찍은 CT결과 그의 척추 양쪽에는 기둥근육이 생겨 오히려 등뼈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마라톤은 못하지만 김욱동 장로는 하루에 최소 100km씩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4박5일간 자전거로 종주하는 기록도 세웠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웃을 일도 감사할 일도 없지만 그는 틈틈이 웃음전도사로 나서기도 한다.
요양병원에 가서 강의를 하다보면 지친 몸으로 인해 마음까지 닫힌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김 장로는 자신의 등을 보여주면서 “세상에 대해 불평을 해서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불평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밝은 생각을 하자”고 전하면서 웃음을 선물한다.

이렇게 누구보다 몸과 마음의 강건함을 허락하신 그의 마지막 기도제목은 마리아 릴케와 같은 시인이 되는 것.
“지금까지 있던 시인들의 시류가 아닌 나만의 아류를 만들고, 시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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