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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능탁이정지서청(孰能濁以靜之徐淸)한희철 목사(성지교회)

오래가는 책이 있다. 한 번 읽고는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책이 있다. 이따금씩 꺼내보는 손길에 책의 표지가 너덜너덜 닳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책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오랜 벗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단순한 기쁨」이다. 엠마우스 공동체를 시작한 피에르 신부가 쓴 책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매년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설문조사를 통해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팔 년 동안 일곱 차례나 1위에 오른 이가 피에르 신부였다. 이제는 이 땅을 떠나 주님 품에 안긴, 노사제를 향한 프랑스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이 남달랐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단순한 기쁨」은 자살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살의 충동에 굴복하기 전 삶의 기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보낸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쓴 책으로, 책 속에는 되새김질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선명하기도 하여 마치 고산 미답의 산꼭대기 벼랑에 서서 무수한 세월 풍상을 견디며 꼭 필요한 것으로만 남은 한 그루 나무를 대하는 것 같다. ‘신자와 비신자 간의 근본적인 구별은 없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별이 있을 뿐’이라는 고백은 위험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무뎌진 양심과 믿음을 벼리는 숫돌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신앙에 대한 설교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 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밑줄을 그은 구절들이 적지가 않다.

책 속에는 교회의 존재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도 있다. 새로운 교황대사의 관저가 건축되고 있던 남미의 한 대도시에서 저자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그것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건축이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밤에 몰래 와서 타르로 벽에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나니’라고 적어놓곤 했다. 그러자 건축을 맡은 성직자가 경찰을 불렀다. 교황의 집에 복음의 말씀이 적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이 느낌표로 끝나고 있는 것이 깊은 탄식처럼 여겨진다.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떤 가난한 나라에서는 고위 성직자의 재산이나 생활수준이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된다. 성소의 아름다움은 그 대리석 포석이나 장식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소 주변에 거주지 없는 가족이 단 한 가족도 없다는 사실에 달려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까?”

다시 한 번 성탄을 맞이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찾아오시는, 자기를 모두 비우신 분을 맞이하는 날이다. 더없이 초라한 천상의 아기! 가장 역설적인 모습으로 주님은 찾아오신다.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숙능탁이정지서청’(孰能濁以靜之徐淸)이라는 말을 묵상한다. ‘누가 흐린 것과 어울리면서 고요함으로써 그것을 천천히 맑게 해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돌아보면 주님이야말로 그렇게 오셨고, 그렇게 사는 것이 주님을 모시는 삶 아닐까!

기독교타임즈  webmaste@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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