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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선교의 장점과 성육신적 선교다문화 이해와 선교 네트워크 전략 ③

이슬람권이나 힌두, 불교권역에서는 선교사가 파송되었다하더라도 그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들 미전도 국가들 또는 종족들은 강력한 문화적 정체성과 반 기독교적 감정을 갖고 있어서 쉽게 선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상종교일수록 민족적, 지역적, 혈통적 유대가 강해서 다른 종교를 강하게 배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전도 대상국의 이주근로자들에게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낯선 외국에서 외로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친절 하나에도 쉽게 감동한다. 그런 이주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제를 나눈다면 그들의 마음문은 쉽게 열린다. 이런 섬김을 통해 마음이 열릴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되게 하여 사명을 가지고 본국에 들어가 선교사로 사역하게 한다면 그 효과는 자국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신앙양육을 받고 본국에 돌아간 이주근로자를 해외 현지 선교사와 연계하게 된다면 선교사의 훌륭한 동역자가 될 수 있다.
이주민·다문화 선교는 우상종교의 역선교를 방지하는 일도 된다. 현재 이슬람은 한국을 전략적 포교국가로 삼고 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학원 포교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한국여인과의 정략적 결혼을 통하여 포교를 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을 이미 수립해 놓고 시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무슬림은 의도적으로 한국 여성들과 결혼을 시도하고 있으며 또 하고 있다. 필자가 수원에서 만났던 무역업을 하는 파키스탄 무슬림의 경우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인 아내는 6개월 전 파키스탄으로 보냈는데, 그 이유는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여성으로 교육받고 오라는 것이다. 한국인 여성들, 특히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에게는 얼마든지 이들이 결혼상대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장래 유망한 젊은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났던 또 다른 파키스탄 젊은이들 2명은 한국 여성을 결혼상대로 찾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영국에서, 또 다른 사람은 홍콩에서 IT (Information Technology)분야를 전공하였다. 사실, 국제결혼을 통한 포교는 전 세계적으로(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동일한 무슬림들의 전략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무슬림들은 대학 지성인들을 목표로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무슬림들이 정계, 경제계, 학계에 저명인사들로 입지를 굳힌 지 오래이며 그들은 무슬림을 미국 대통령으로 세우려는 최종 목표까지 세워 놓은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아주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한국 교회들이 무슬림들의 포교 전략에 대하여 무관심(無關心)과 무지(無知)가운데 있는 동안 그들은 뛰고 있으며 치밀하게 한국인 포교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주민 선교를 강화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우상종교의 역선교를 방지하는데 있다.

성육신적 선교
(Incarnational Mission)

성육신은 스스로 하늘에 이를 수 없거나 하늘에 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교회 또한 교회에 올 수 없거나 교회에 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으로 성육신해 가야 한다. 또한 성육신이 의원을 필요로 하는 병자와 같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오신 사건이었다면 교회 또한 여러 면에서 병자와 같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총체적 차원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다음의 몇 단계를 밟았다. 이 단계들은 이 시대의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첫째,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먼저 그들과 같이 되셨다. 나사렛 사람이 되셨고, 그들과 함께 사셨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들과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둘째,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도 참석하시고, 세리 마태의 집에서 함께 먹고 즐기셨으며, 베드로의 장모 집도 방문하셨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또는 세상의 단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셋째,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그들의 필요가 보일 때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다. 외로운 세리 마태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베드로의 장모가 아팠을 때 고쳐주셨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어떻게 해결해 주고 있는가?
넷째, 주님이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시자 그들은 깊숙이 숨겨놓았던 문제들을 내어놓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 아픔들을 치유해 주셨다. 대낮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외로운 삭개오를 찾아가 구원에 이르게 했다. 교회는 사람들의 속 깊은 상처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섯째, 인생의 깊은 문제들은 영적인 구원의 문제로 연결된다. 예수님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문제, 곧 영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교회는 지금까지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만 관심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 사역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앞의 단계들이 선행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영적인 구원의 단계에까지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주민 사역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육신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나 단체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람들은 복음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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