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1.19 목 10:40 기사제보신문사소개광고안내
인기검색어 : 연회,
뉴스 > 목회/신학 | 목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
[성탄설교] 김정석 목사
2016년 12월 22일 (목) 00:53:48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장 1-14절)

어수선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다시 성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성탄의 기쁨과 주님 주시는 평강이 풍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가장 큰 기쁨이며, 온 인류가 함께 나눠야 할 가장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탄을 축하하는 의미가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선물을 받는 날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만나는 날로, 공휴일로, 또는 다른 사람을 돕는 날로 성탄절을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 뉴스에서 20~30대의 남녀 250명을 대상으로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문 조사를 해 보도했습니다. 69명이 “공휴일이다”라고 대답했으며, 50명은 “친구들과 즐기는 날”, 35명은 “연인에게 사랑 고백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저마다 성탄절의 의미가 달랐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 날”로 대답한 사람은 68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천여 년 전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오늘날과 같은 성탄이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전하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것처럼, 성탄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당시에도 이 진정한 의미의 성탄을 누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동방박사, 목자들, 사가랴, 엘리사벳 등 소수의 사람에게만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반면, 성탄의 소식을 듣는 순간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아기 예수를 죽이겠다고 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헤롯 왕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곧 심판의 소식이었습니다. 헤롯 왕과 서기관들은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와 메시아가 난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들레헴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왕위를 뺏길까 조바심내며 증오와 미움의 마음으로 아기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들 또한 성탄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심판의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거룩한 탄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역사 속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이 소식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위로의 소식이며 소망의 소식이고 온 백성에게 미친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천사가 전했던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보좌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마태복음의 시작과 끝은 임마누엘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 시에 남긴 말씀대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미국 캔자스의 한 교회에 허름한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들어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예배가 끝난 후 그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년이 말하기를, 자기는 19세 때부터 만화를 그려왔는데 어느 출판사도 자신의 그림을 받아주지 않아 캔자스의 출판사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 기차 정거장에서 잠을 청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겁니다. 측은히 여긴 목사님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교회에 창고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지내며 교회 일을 돕고 그림공부를 하겠어요?” 이 말에 청년은 감사한 마음으로 창고에 묵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는 교회 청소도 도와주었습니다. 수개월 묵는 동안 청년에게 뜻밖의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생쥐였습니다. 처음에는 쥐들이 청년을 보고 도망갔지만 먹을 것을 주니 더는 도망가지 않고 청년 곁에 머물렀습니다. 목사님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창고에 사는 쥐 한 마리까지도 사랑하시네. 하나님은 언제나 자네와 함께 계시니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만화를 그리게나.” 청년은 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만화로 옮겨 그렸습니다. 그 만화가 바로 “미키 마우스”입니다. 그리고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월트 디즈니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그림을 그렸더니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만화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큼 큰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병들었을 때 치유하시는 하나님, 실패와 좌절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하나님, 염려하고 있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며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바로 성탄의 기쁨 소식이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며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 말씀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께는 영광입니다. 영광이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죄악, 교만, 어려운 상황, 절망과 좌절, 관계의 아픔...,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에덴동산에는 4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손 강, 기혼 강, 힛데겔 강, 유브라데 강입니다. 기손은 ‘뛴다’라는 의미를 가졌고, 기혼은 ‘은혜’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힛데겔은 ‘결실’이라는 뜻을,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풍요와 행복이 넘쳐나는 평화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가 깨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파괴와 단절은 불안과 염려를 불러옵니다. 인간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보지만, 진정한 평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어둡고 무서운 밤에 미국의 항공모함 한 척이 남태평양의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적의 잠수함의 공격 때문에 배의 모든 불을 꺼두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비행기 한 대와 승무원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넓은 바다에 빠지지 않고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소망은 항공모함을 찾아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종사가 아무리 봐도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새카만 밤하늘을 빙빙 돌면서 빛을 찾을 수 없자 절망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함장이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오지 않은 비행기와 조종사 한 명을 위해서 갑판에 불을 켜라고 지시했습니다. 갑판의 불을 켜자 칠흑 같은 바다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비행기가 갑판에 안착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이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그 빛을 모시고 살 때에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고 불안과 염려가 사라지며 참된 위로와 평화, 샬롬의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영광은 은혜와 진리의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은혜와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 삶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며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진리입니다.

벅앤 파인 병원이라는 곳에 20년 동안 누워있는 조이스 애킨스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을 잃었고, 함께 탔던 3명의 아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인은 하반신 마비로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해 죽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원망과 불평 가운데 자신을 좀 죽여 달라고 다른 이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에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년, 예수를 믿으라고 간청하는 분들이 많아 결국 교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전도를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그녀의 마음속에 불안과 원망이 사라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에게 한 가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명화를 그대로 옮겨 그리기도 하고, 꽃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그린 그림을 팔아서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전하면서 이 여인은 두 가지의 것을 감사했습니다. “나는 두 가지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몸은 불구가 되었지만 불완전한 몸으로 온전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내 몸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을 겁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축복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비로소 눈이 뜨여졌습니다.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분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이 정말 감사하고 제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저는 아기 예수의 오심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고 저 또한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며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 안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샬롬의 축복이 넘쳐나며, 은혜와 진리 안에서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갈 때, 삶의 목적이 분명해져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하나님의 형상이 덧입혀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큰 기쁨의 소식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정과 공동체, 이 나라와 저 북녘땅, 더 나아가 온 인류에게 미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보기(0)
가장 많이 본 기사
법원,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 '취소
동작지방 장천기 감리사 지위회복
감리회 교사 1000명 “어린양을 살
하나님께 ‘충성’, ‘필승’하는 군복
跛行 감신대 … 이사장은 과연 누구?
15년째 기독교 박해 '부동의 1위'
한교연, "통합 걸림돌" 이단 연구
"종교개혁 의미 되새기고 교회 일치
“특목고·자사고는 폐지해야 한다?”
효과적인 청년 사역 위한 객관적 데이
신문사소개 | 구독1신청 | 기사제보 | 광고안내 | 사업제휴 | 오시는길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64-8 | 전화번호 (02) 399-4387 | FAX (02) 399-439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동명
C
opyright since 2005 기독교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mc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