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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하나 됨의 힘,
예언자적 사명에 집중할 때다
924호 사설

한국교회총연합회가 지난 9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출범 감사예배를 열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사분오열(四分五裂)된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역사를 뒤로하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이 모두 참여하는 명실상부 한국교회 최대 규모 연합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 나뉜 한국교회 연합사업 현실에서 제4의 연합기구가 출범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지금껏 한국교회 전체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 규모의 연합회는 전례가 없다. 감리회를 시작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 기독교한국침례회, 예장 대신 등 한국교회의 주를 이루는 7개 교단 뿐 아니라 기독교한국루터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고신, 합신,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교, 대한예수교복음교회, 그리스도의교회교역자협의회,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등 한국교회 전체 교세의 95%가 넘는 15개 교단이 참여키로 했다.

대표회장과 총무 등 자리가 생길 때마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거듭해온 기존의 연합기관의 모습과도 다르다. 감리회와 예장 통합, 합동 3개 교단 총회장이 공동대표를 맡아 단체를 운영하고 향후 5년간 대표회장 선거 없이 감리회를 비롯한 예장 통합, 합동, 기성, 기하성, 기침, 대신 등 7개 교단 현직 총회장을 상임대표로 하고, 7개 교단을 제외한 회원 교단 총회장은 공동회장단으로 참여키로 했다. 연합의 과정도 한기총과 한교연에 가입해 있는 단체들을 합류시키되, 과거 분열의 단초가 됐던 이단은 선별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한교총이 현재와 같은 기조를 유지해 나간다면 법인격을 갖추는 등의 추가적인 절차가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교회 전체가 연합할 경우 교단총회 간 신학적 정체성에 따라 나뉘어 온 기존 연합기구의 신학 및 이념적 한계도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국내 개신교 인구가 1000만 명에 육박(967만6000명)하며 국내 최대 규모의 종교로 떠오른 것과 맞물려 정치권의 관심 또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교총 출범식 현장에서는 하나 된 한국교회가 19대 대선에서 기독교 입장을 담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하나 될 경우 이슬람, 동성애, 목회자 납세, 이단 문제 등을 기독교 입장에서 말하고 반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은 교단까지 힘을 합쳐서 대정부, 대사회 문제에 함께 하자는 주장은 가입을 고민 중인 교단들에게 큰 매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한교총의 출범은 분명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한교총이 ‘주님의 몸’인 ‘교회공동체’를 기반하고 있다면 분명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과 함께해야 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권력에 맞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교회개혁이라는 새로운 영적 운동의 새바람이 필요한 시기인 만큼 정치나 이념이 아닌 순수 신앙 운동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복음의 능력 덧입어야

최근 입시를 앞둔 학생과 취업을 앞둔 졸업생,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한 사주 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과 종교인까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불확실성(不確實性)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이라고 하나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가치가 이토록 무의미한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

마펫(마포삼열)과 게일(기일)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아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이 된 한석진의 편지를 근거로 1897년 3월 10일 자 조선그리스도인회보에 실린 ‘회중신문’에는 이런 글이 등장한다. “신 씨라 하는 무당이 있으니 별호는 ‘부전’이라 하는데, 풍채도 얌전하며 언담도 좋으매 무당 중 제일로 뽑히며 화복도 잘 안다고 하기를 우금(于今=지금까지) 30여 년이라. 한번 예수교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원통한 마음이 나서 주를 믿는데… (중략) … 날마다 많이 오는 사람들을 접대하여 앉히고 이전 죄짓던 말과 예수씨를 믿은 후로 마음이 평안하녀 복 받는 말로 간절히 예수씨 믿기를 권하며 울며 전도하니 참으로 감화하는 사람이 많더라.”

극한의 경쟁이 난무하는 현대 불확실성의 시대로 과연 풍전등화 속 조선을 살아간 신앙 선배들의 삶 앞에 핑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신앙 선배들이 보여준 믿음의 확신과 기개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120년 전 복음으로 무당의 삶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킨 능력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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