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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 넘어 보니 주님의 사랑 느껴요”변종승 선교사 부부만의 ‘비밀’ 인터뷰
   
 
     
 

2016년 10월. 평소와 다름없이 라오스에서 차를 이끌고 사역지로 향하던 변종승 선교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이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뒤였다. 사고처리를 위해 전화기를 손에 쥐어보려 했지만 전화기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2주간 원인 모를 두통이 지속됐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난달 16일. 지역 선교사들과의 정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는 동료들을 반길 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에 마비가 왔고,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닥친 전신 마비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동료 선교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한 선교사가 긴급 심폐소생술을 했고, 가방에서 침을 꺼낸 다른 선교사는 그의 온몸에 사혈을 시작했다. 모두가 달려들어 그의 몸을 주물렀다. 어느새 나타난 이민국 직원이 부른 응급차에 실려 지역 병원에 도착했지만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말에 국경을 넘어 태국 국립의료원을 향했다. 비자가 만료돼 여권도 비자도 없었지만, 현지 대사관과 이민국 경찰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뇌출혈을 동반한 허혈성 뇌경색이었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에서 만난 변종승 선교사(44세)와 그의 아내 심은미 선교사(41세)는 웃고 있었다. 사선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도착한 사람의 모습은 아닌 듯했다. 심각하지 않은 듯해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담당 의료진은 “그곳 날씨가 한국의 겨울 날씨 같았다면 아마 지금 여기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재발한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그의 아내는 남편이 쓰러지던 날 이후 줄 곳 남편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암 수술 후 수년째 항암 치료 중인 그의 모친도 날이 밝으면 병원을 찾아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변 선교사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든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한국 도착 직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일이 이뤄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지켜봐도 고민이 없어 보이는 듯한 부부에게는 그들만의 비밀이 있었다. 2012년 9월 선교지에 도착한 뒤 처음 만난 성도들은 이미 많은 선교사를 거친 뒤였다. 선교사의 삶을 더욱 잘 아는 현지 성도들의 눈에 변 선교사 가족은 잠시 스칠 인연이었다. 이미 눈빛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성도들과 대면한 변 선교사 부부는 예배당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다. 왜 저런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하는지를 묻는 그에게 주님은 “내가 그런 자인 줄 네가 몰랐느냐?”고 하셨다. 거듭 항변하자 주님 역시 “내가 늘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인데, 네가 왜 그것을 모르느냐”고 거듭 말씀하셨다. 한참이 지났다. 이런 식으로는 어린 부부를 달랠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주님은 “내가 무엇을 해주랴?”고 물으셨다. 부부는 “앉은 자와 병든 자가 일어나는 역사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해 달라”고 했다.

선교사 부부는 “당시엔 몰랐지만, 결국 우리가 도마 위에 오르길 기도했더라”고 했다.

사역을 시작한 부부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서 사역비 지원을 받으며 사례비를 또 받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선교보다는 라오스 현지의 한인들이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한인교회와 라오스와 인근 국가 선교사들이 사역 중 지쳤을 때 언제든 방문해 쉼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영적 쉼터’로 사역 방향을 잡았다. 절기헌금은 지역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를 섬기는 데 사용했다. 간혹 들렸다 가는 라오스 현지인들을 위해서는 도서관을 열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한국어 강좌를 통해 한국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의 라오스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열어주는 등 순수 쉼터 형태로 섬김에 최선을 다했다. 현지 한인들을 위해서도 문화센터를 열어 꽃꽂이, 김장, 아동을 위한 요리, 천연화장품 제작, 수제인형 제작, 킬트, 아기 돌봄 등 할 수 있는 모든 사역을 시도했다. 도착 후 첫 예배 당시 변 선교사 부부와 예슬, 준수, 예희 세 자녀. 그리고 한인 1명이 함께 했던 예배는 3년 만에 출석 인원 100명을 넘어섰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 최대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부부는 “지금은 잠시 스쳐 가는 어려움일 뿐, 내가 주인 된 삶이 아닌 주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고 싶다”며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는 전도서 7장 3절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변 선교사 나이에 순직한 아버지(故 변철규 목사)를 생각해서라도 건강으로 효도하라는 기자의 인사에 변 선교사는 “하나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하시려고 은혜를 주시는 것 아니겠냐”며 “하나님께서 예배하게 하신다”고 전했다.

신동명 기자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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