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회 미션
그렇게 해서라도…군 선교 현장에서 - 정재원 목사
   
 
   
 

‘군 선교의 환경은 병영문화의 개선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임 군목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꼭 맞는 말입니다. 그 시절에는 교회가 병사들로 꽉꽉 찼었습니다.

병사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숨 막히는 내무반을 떠나 교회를 피난처로 삼아 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내무반에서는 감히 쓸 엄두를 못 냈던 편지를 쓰기 위해 교회에 왔던 것입니다. (군목 임관 후 첫 예배 때 수 십 명의 병사들이 제 설교를 받아쓰는 것을 보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기분 좋게 설교하고 내려왔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제 설교를 받아쓴 게 아니라 편지를 쓴 것이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가끔 저를 쳐다보고 아멘도 해가면서…) 또한 예배가 끝나면 나눠주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기대하며 교회에 왔던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가끔 외부단체를 초청해서 위문집회라도 열면 교회가 터지도록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일직사령들은 준비된 위문품 수량을 먼저 물어보고는 정확하게 위문품 수량만큼 인원을 편성하여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때때로 그 인원 중에는 타종교 군종병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우들보다 더 신나게 박수를 치며 실로암을 부르곤 했으니까요. 그 병사들이 예배를 목적으로 교회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병사들은 예전 선배 병사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왜 불편하게 교회에 와서 잠을 잡니까? 생활관(내무반) 자기 침대에서 편하게 자야지요. 당연히 편지도 자기 침대나 책상에서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초코파이요? 20만 원 가까운 월급을 받는 병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PX에 가서 이빨 빠질 때까지(?) 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초코파이에 열광하지도 않습니다. 주일이면 편안한 생활관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시청하고 또는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바깥세상과 소통합니다. 병사들의 편안한 휴식과 자유시간이 완벽하게 보장이 됩니다. 새로운 병영문화의 기본입니다. 그러니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신고를 하고, 걸어서 교회로 올라오는 수고를 자처할 병사들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요.
이렇게 날로 악화되어가는 군 선교 환경을 바라보며 한숨짓던 그 시기에 병사 한 명이 제 방문을 노크합니다. 세례를 받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온 그 친구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등병 시절 교회를 피난처 삼아 부족한 잠을 보충하러 온 병사는 그 날도 예배 시작 전부터 잠을 자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에 차마 엎드려서 자지는 못하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잠을 자는데 한참을 자다가 옆구리가 결려서 잠깐 깨어나 왼쪽으로 자세를 바꾸던 중에 이 친구 귓속에 꽂히는 찬송가 가사가 있었답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갑자기 울컥하더랍니다. 처음 듣는 찬송이었는데…. 다음 주에도 이 찬송가를 생각하며 교회에 오게 되었고 군종병을 통해 악보를 하나 구하여 흥얼거리며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출석한 예배 자리에서 결국 말씀을 통해 믿음이 생기게 되고 자기도 세례를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찬양 가사 한 소절이 이 친구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할렐루야!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저는 은혜와 감동은 물론 다시금 군 선교의 분명한 사명과 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때는 군 선교의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짜내어 경품추첨, 설교퀴즈, 마일리지제도, 과분한 간식 등 온갖 방법을 시행하다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회의감이 들었던 때였는데 이 친구 덕분에 분명한 답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배의 자리에 데려다 놓아라! 졸더라도, 자더라도, 간식 때문이든, 선물 때문이든…. 어떤 이유로라도 그 시간 그 예배의 자리에 병사들을 데려다 놓아라!” 그래야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말씀이 그들 귀에 들릴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왼쪽으로 바꾸는 그 시간이면 됩니다. 찬양 한 소절이든, 말씀 한 구절이든 심령 속에 꽂히면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찬송이 울려 퍼지고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에 있지 않고 생활관 침대 속에, 사이버 지식 정보방 컴퓨터 앞에, TV 앞에 그리고 엉뚱한 자리에 가 있다고 하면 이런 변화와 역사는 일어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도 10여 년 전에 주신 답을 마음에 품고 실천하기 위해 동역자들과 지혜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