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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한철호 선교사 / 미션파트너스 대표
   
▲ 한철호 선교사 / 미션파트너스 대표

선교적 존재가 된다는 말은 타문화 선교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타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이것은 더 본질적인 이야기다. 선교적 존재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는 말이다. 왜 우리가 보내심을 받은 선교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선교적 존재이시다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선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보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성령님이 하나님이시므로 결국 하나님이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내시는 분이시면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보내는 자이기도 하지만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보내시고 동시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께서 선교적 존재인 것처럼, 우리도 선교적 존재이다. 우리가 선교지로 사람을 보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교적 존재의 의미이다.

 

선교적 존재에서 선교적 삶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선교적 존재로부터 선교적 삶이 나오는 것이고, 선교적 삶으로부터 선교적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내심을 받은 선교적 존재로 살아가는 자들의 삶에는 첫째, 자아 중심에서 타자 중심의 삶을 사는 모습이 발견되어야 한다.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이 타자 중심의 삶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둘째,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내진 것이다. 나그네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여정 가운데서 얻은 것이나 소유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셋째, 경계선을 넘는 일을 힘들어하지 말아야 한다. 보내심을 받은 이들은 경계선을 넘어서야 한다. 인종의 경계, 남녀의 경계, 문화의 경계, 생각의 경계, 소유의 경계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넘나들어야 한다. 넷째, 보내심을 받은 이들은 최종 목적지를 바라다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집착하기보다는 공유하고,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선교적 삶은 자발적 희생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보내심을 받은 자로의 삶은 자기의 희생을 기초로만 가능하다. 타자를 향해 강요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초대하고, 주도하지 않지만 이끌어 가고, 머물러 않지만 남기고 가고, 요구하지 않지만 요청되게 하고, 들어가지 않지만 들어오게 하는 일은 끊임없는 인내와 자기의 희생으로 가능하다.

이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 안으로 쳐들어오지 않으시면서도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은 내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내 문제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다. 그분은 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나와 함께 있자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선교는 가는 것이기 전에 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서 복을 누리듯이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보내심을 받은 존재가 될 때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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